여행/2012 동유럽2012. 7. 15. 17:59

 

나는 못했다.

이틀동안 네 번인가 찾아갔지만 날씨가 워낙 변덕스러워서 위험하다고 안시켜줬다.

마지막 네 번째엔 하도 하고싶어하니까 (출국 비행기가 7시인데 3시에 다이빙하는 스케쥴. 거기서 비행기 놓칠 수 있다고 하지 말라고 했다)

결국 가장 먼저 다이빙하게 해 주고, 대신 왔다갔다 이동을 그들의 봉고가 아닌 개인 택시로 하게 해 주었다. (택시비는 개인 지불. 비행장은 서울-화성 거리보다 더 멀어 보였다)

 

그래서 출발을 했다. 오후 1시쯤.

그러나 프라하에서 맑던 날씨가 이동할수록 흐려지기 시작했고, 비행장에 다 온 것 같은데 비가 후두두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못하고 출국했다.

눈물이 났다

ㅠㅠ

 

 

인터넷으로 날씨에 따라 변경이 될 수 있다는 리뷰를 읽은 적이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프라하에 한 3일 일찍 도착해서 매일 찾아가서 오늘 되냐고 물어보는 건데..

 

 

그리고

한국에서 알선해주는 사이트가 하나 있는데

예약금 한사람당 3만원 중반대의 돈을 내고 가야 한다

그런데 막상 가 보면 한국 사무실이 아니라 체코 현지의 젊은이들이 운영하는 곳이었고

예약금을 받은 한국 사람은 그냥 한국 사이트를 개설해서 한국인들이 더 많이 오도록 해 주는 역할 같았다

 

현지인들 모두 영어를 잘 구사하고

영어를 못하더라도 대충 말하면 알아들을 만 하니

그리고 예약을 하고 갔을 경우 날씨 때문에 못하면 골치아프고

하루에 2-3번 뛰고, 오늘 예약하면 내일 할 수 있는 등 시스템이 간단한 것 같으니

한국에서 예약하지 말고 가서 예약하길 추천한다.

 

 

위치는 구시가광장 쪽 들로하 거리(Dloha)에 있고

가고싶은 사람은 프라하 skyservice를 구글링해서 가면 된다

위치만 알아놓고, 결제와 예약은 가서 하면 된다

 

가격은

다이빙만 할 경우 20만원 초반대, DVD로 제작할 경우 35만원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런데 DVD로 안만들면 후회할 것이다. 영상 퀄리티가 생각보다 괜찮다! 거기 있는 모두 DVD 만드는 것 같았다.

 

 

ㅠ_ㅠ

다음에 프라하에 가면 정말 꼭 놓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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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개꾸엉
여행/2012 동유럽2012. 7. 15. 14:28

 

 

베네치아에 원래부터 이렇게 물이 차 있는 건 아니었다. 베네치아는 아드리아해의 해안가 주변의 석호 섬에 게르만족을 피해 온 이탈리아 사람들이 주거를 시작하면서 점차 마을, 도시 형태로 변모한 것이다.

베네치아의 정식 명칭은 이탈리아어로 Serenissima Repubblica di Venezia로, 이를 번역하면 가장 고귀한 베네치아 공화국이다. 5세기부터 사람들이 정착하기 시작해, 11세기까지는 원래는 하나의 공화국이었다.

산물이라고는 소금과 생선 뿐이었지만, 목재와 노예를 교역하면서 상술과 항해술을 키워나갔다. 그런 끝에 주변의 프랑크 왕국과 비잔티움 제국 사이에서도 조금씩 세력을 넓혔으며, 1204년 4차 십자군 때에는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이자 당시 유럽의 최고의 도시였던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함락시키기도 했다.

15세기 들어 베네치아 공화국은 에개해의 다른 섬들까지 정복하고 이탈리아 본토의 일부까지 차지하며 세력과 부를 키워 나갔다.
베네치아의 쇠퇴는 아메리카 대륙이 발견되면서 시작되었다. 16세기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면서 교역의 중심이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바뀌었고, 무역에 의존하던 베네치아가 쇠퇴하게 된 것이다. 이후 베네치아는 무역에서 주도권을 상실하여 수공업을 통해 부흥을 꾀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이탈리아 본토의 속주로 주도권이 옮겨가 베네치아는 쇠락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베네치아인들이 하나하나 만들어낸 고풍스러운 건물들은 다행히 큰 전쟁이 없어 오랫동안 보존되었다. 이 물과 문명이 빚어낸 묘한 낭만에 추억을 만들고 가는 관광객만 연 300만명. 볼 것도 많고 갈 곳도 많은 이탈리아 중에서도 낭만적인 풍광으로는 이탈리아의 어느 도시에도 뒤지지 않는다. 

시내 교통수단인 곤돌라. 엄청 비싸다.

이 아저씬 음악까지 연주해 주신다.

유럽엔 공짜 서비스란 없으니 음악 들은 값도 내야할 것이다(아마도)

건물의 아랫부분이 거의 잠긴 모습

바다 위에 건물이 떠다니는 것 같다.

 

 

 

 

  

 

 골목도 물에 차 있다

 이런 골목도 물론 있지만

관광객을 위한 식당가

쇼핑거리

최근 베네치아의 홍수 발생 확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베네치아 사람들은 수백년 동안 물과의 공존과 투쟁을 숙명으로 여기고 살아왔지만, 갈수록 상승하는 수위는 사람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걱정거리다. 2009년에는 이틀동안의 집중 호우로 수위가 정상치보다 150cm나 높았던 적이 있었다. 이외에도 1966년 194㎝, 1979년 12월 166㎝, 1986년 12월 158㎝ 등 기상 이변이나 폭우로 인해 주기적으로 정상 수위보다 높아진 적이 있었다.

그래서 베네치아 시 당국에서는 바닷물이 베네치아로 들어오는 수로 입구에 강철로 만든 거대한 방벽을 구축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수로 입구에 철 구조물 여러개를 세우는 초대형 공사다. 공사비만 50억~70억 유로(약 8-10조원)에 달한다.

 한때 자치적으로 왕을 뽑아 공화국을 만들고, 이웃나라 왕국의 수도를 점령하고 전쟁에서 승리하며 세를 키워 나갔던 베네치아. 지금은 이탈리아의 한 도시로 남아 관광지로 변모했다. 베네치아에 가면 (특히 여름에) 마주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관광객이며, 상점이나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 외에 지역 주민을 만나기는 대단히 어렵다. 산 마르코 광장이나 쇼핑가같은 곳에는 사람들이 붐비는 반면, 지역주민들이 사는 골목골목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 아마 관광객에게도, 지역주민에게도 서로 좋은 게 아닌가 싶다.   

 유일하게 베네치아에서 발견한 지역주민(으로 보이는 사람)

 1년에 네 차례, 베네치아 수로의 수위가 평소보다 110㎝ 이상 높아지면 도시 전역에 사이렌이 울린다고 한다.

베네치아에 있으면 안될 것 같은 기마상

 

 산 마르코 광장

 

 음악이 연주되는 산 마르코 광장의 노천 카페. 저기 맥주 15유로였던가. 아무튼 세계에서 제일 비싼 것 같다.ㅎㅎ

 

 기념품을 파는 노점상.

 가면이 많다.

 

 

 

 

 

DHL 국제 배송 서비스도 여기서는 배로 다녀야 한다. ㅎㅎ

 

 

여행정보

국가 : 이탈리아(유레일패스 통용국)

20시간 이내 이동 가능한 인접국가 : 슬로베니아, 오스트리아, 스위스, 크로아티아

화폐 : 유로

교통수단 : 비행기/야간열차/열차/고속버스

시내 교통수단 : 곤돌라/수상버스/수상택시 (뱃길 말고는 차나 버스가 다니지 않음)

물가 : 이탈리아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비싸고 특히 숙박비가 엄청나게 비싸다.

음식 : 주로 이탈리아 음식인 피자나 파스타를 취급하는 식당이 많다. 그러나 이탈리아라고 피자나 파스타가 전부 맛있는 건 아니다. 음료를 많이 팔기 위해 물도 주지 않고 일부러 음식을 짜게 하거나 가격을 속이는 등 바가지가 많으니 주의해야 한다.

기후 : 여름 낮에는 덥고 습하고(우리나라 여름 정도의 습도에 우리나라보다 더 더운 햇볕) 밤에는 서늘하다 (우리나라 초가을 날씨)

기념품 : 길가에 가면이나 유리공예품이 많으나 딱히 살 건 없다. 물가도 비싼 편. 지인의 기념품이라면 다른 도시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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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개꾸엉
여행/2012 동유럽2012. 7. 15. 02:46

I had three kinds of meals : yogurt+bread+salad or 2 yogurts and coke, or breakfast buffet or special meals(expensve , but they deserve it) druing traveling.

These pictures are special meals except for what I already have posted to my blog.

 

 

Salami shaped snack, less than 20 Czk.

천원도 안되는 살라미햄 모양 칩. 베이컨칩의 쏠티 버전

 

하지만 짠 만큼 맥주 안주로는 최고 ㅎㅎ 가격도 착하다

비오는 창가에 뒀는데도 눅눅해지지 않는 이상한 칩이다

 

 필스너 우르켈과 코젤 흑맥주. 코젤 승!

Beef steak with fried mushroom

소고기 스테이크

썰면 잇몸같은 속살이 나온다

 Ceaser salad

코스트코, 매드포갈릭, 미스터피자, 베니건스 통틀어서 쨉도 안되게 맛있었던 시저!! 

크루쇼비체 길거리 맥주. 미성년자한테도 팔 것 같다. 

 길거리 꼬치구이상(?)의 핫도그. 바게트에 넣어 준다. 그 물가 싼 프라하에서 무려 5천원짜리!

 양배추 수프. 야채죽에 쌀알만 없는 미음같았다.

속엔 감자와 버섯이 있다. (양배추는?!) 

필스너의 본고장 플젠의 한 펍에 있던 필스너 간판(?) 

 시저샐러드를 시킨 곳에서 시킨 그냥 샐러드. 그냥 그랬다.

립.

 립과 같이 먹으라고 나온 피클과 머스타드 트레이. 머스타드에 설탕이 안들어가 달지 않고 씁슬+신 것이 특징.

 피클과 머스타드와 립 한 조각. 사실 태어나서 립 처음 먹어봤다.

삼겹살이 낫다.ㅠㅠ

 costa는 카페 체인인데 우리나라 스타벅스 정도의 돈을 받는다. 프라하 치곤 비싼편!

케이크는 그냥 그랬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수프. 치즈가 들어가 있어 치즈를 녹여 먹는다.

굴라시에서 짠 맛을 없애고 신 맛을 넣은 것 같은 맛이다. 

홈메이드 소시지. 그냥 진짜 소시지다. ㅋㅋ

 식용비닐이 비닐이란 걸 제대로 실감할 수 있었던 소시지. 비닐이 잘 안찢어진다. ㅠ

 잘츠부르그에서 먹었던 중국 음식. 유러피언-차이니즈 스타일을 체험하기 위해 먹었다.

코리안-차이니즈가 짱이에요.

 할슈타트에서 먹은 전기구이닭과 핫도그.

이름이 거창한, 분명 '요리'였는데 기억이 안나므로 전기구이닭 ㅎㅎ

 이것도 그냥 그랬다. 앞에 한글로 KBS 촬영팀이 강추하고 갔다고 해서 혹해서 먹었는데

속은 기분이었다. ㅜㅜ

 

 

뮌헨의 한 펍에 들어가서 먹은 맥주. 호프브로이에 들어갔더니 거기 있던 100여명 손님 중에 10명 이상은 한국인으로 보였다. 

 여기가 뮌헨인지 이태원인지 모르겠어서 호프브로이 대신 다른 곳에 갔다.

로컬 피플들만 갈 것 같은...?!ㅎㅎ

좋았다. 맥주도 맛있었고

맥주보다 소시지가 정말 좋았다.

이 앞부분의 하얀 것은 양파를 채썰어서 새콤하게 한 것이고

왼쪽의 노란 건 으깬 감자 샐러드이다. 저 샐러드가 정말 소시지보다 맛있었다.

소시지도 맛있는데 (독일이니까?!) 감자가 더 맛있다면..

 유러피언 순대 소시지. 우린 소시지를 잘 먹는데 유럽인들은 순대를 잘 먹어 줄까?

피를 연상케하는 색깔과 세포를 연상케하는 규칙적인 원형 패턴이 순대를 꺼리게 만드는 것일까?

원래부터 맵고 짜게, 그러나 단 맛은 거의 없게 요리를 하던 한국이라

달짝한 머스타드나 케첩에 찍어 먹는 순대에 익숙한 유럽인들에게

비릿한 순대를 맵고 짠 춘장에 찍어먹으라니 생소할 수도 있겠다

 

그러면.

간을 먹어봐야 한다

순대의 느끼함을 없애줄

퍼석퍼석한 간을 먹으면 생각이 달라질거야

ㅎㅎ

 

 베네치아 까르보나라.

3분 스파게티 승

베니치아 화덕 피자.

피자나라 치킨공주 승

ㅎㅎ

 

다신 피자의 본고장 이딸리아에서 피자랑 파스타 안먹는다

 

 

음식 포스팅이 젤 즐겁다

보는 분들도 그랬길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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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개꾸엉
여행/2012 동유럽2012. 7. 15. 02:00

 

베드르지흐 스메타나(1824-1884)

백과사전에는 체코 민족음악의 창시자라고 나온다.

 

 

프라하의 봄의 의미와 스메타나

프라하의 봄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 미국 영화감독 필립 카우프먼이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토대로 만든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고, 프라하에서 매년 5월 12일에 시작돼 6월 초순까지 계속되는 음악 축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엔 '스메타나 축제'로 더 잘 알려져 있다.)프라하의 시민극장 스메타나 홀에서 연작 교향시 <나의 조국> 6곡이 연주되고, 이 개막 연주회는 체코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된다. 체코 태생 음악가 중 국내에 더 잘 알려진 사람은 드보르작이지만, 체코 사람들은 프라하의 봄이 개막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릴 만큼 스메타나의 음악을 좋아한다고 한다.

 

스물 넷 스메타나가 문을 연 음악학교

스메타나는 18살이던 해 이런 일기를 썼다. "신의 은총과 신의 도움으로 나는 언젠가 기술에서는 리스트가, 작곡에서는 모차르트가 될 것이다." 그리고 5년 후에 스메타나는 오랫동안 흠모하던 프란츠 리스트와 개인적인 친분을 쌓게 되었다.

이 개인적인 친분은 스메타나가 리스트에 보낸 편지에 나타났다. 스메타나는 스물 네 살이던 해에 음악학교를 개설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돈이 없었다. 스메타나는 당시 유명한 작곡가였던 리스트에게 음악학교를 여는 데 필요한 자금을 빌려달라는 편지를 쓴 것이다. 리스트는 돈을 빌려주지는 않았지만 이후 스메타나의 작품이 출판되어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고 한다.

결국 스메타나는 자신의 학교를 열 수 있었고, 수 명의 제자를 두며 프라하가 빈에 못지 않은 음악의 중심이 되는 데에 힘을 쏟았다.이 음악학교는 구시가광장의 천문시계탑 맞은편 건물에 있다. 지금은 호텔로 쓰이고 있었다.

 

국립극장을 건설하려는 움직임

1848년은 파리에서 2월혁명이 일어난 해다. 왕정을 철폐하고 공화정을 이끌어낸 혁명의 불길은 곧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3월에는 빈에서 민중봉기가 발생했다. 파리와 빈에서 한 달만에 연이어 일어난 혁명의 소식은 마침내 프라하에 도달했다. 보헤미안들은 합스부르크 왕가를 밀어내려는 봉기를 일으켰지만 실패로 끝났다. 이후 왕가의 압제는 거세졌고, 프라하 시민들은 체코어 대신 독일어를 써야 하는 수모를 겪었다. 음악도 마찬가지였다. 체코어로 된 오페라나 연극을 공연할 수 없었다. 음악가들은 외국으로 나갔다. 스메타나는 이후 보헤미아를 떠나 스웨덴에서 생활했다. 그 때가 1856년이었다.

1860년 들어 체코의 상황이 완전히 바뀌게 됐다. 오스트리아제국의 식민지 정책이 무단 정치에서 문화 정치로 바뀌면서 체코에서 민족운동이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일제 강점기와 비슷한 행보다. 우리나라도 1910년 강제 점령 당시부터 10년 간은 무단 통치의 시기를 겪다가 1920년대부터 갑작스레 문화 통치로 바뀌었었다. 한글 및 민족 음악, 민족 문학의 숨통이 틔었던 시기였다.

이 시기 프라하에서는 체코어 전용 국립극장을 짓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스메타나는 이 소식을 스웨덴에 있을 때 들었다. 스메타나는 유년 시절부터 배워온 독일어를 버리고 체코어를 쓰기 시작했다. 생계를 위해, 그리고 억압된 프라하의 분위기를 피해 망명오다시피 한 스웨덴에서 잊고 살았던 민족의식이 깨어난 것이다. 그리고 1861년 5월 스메타나는 프라하로 돌아왔다.

프라하로 오자마자 스메타나는 음악학교를 새로 열었다. 합창단 지휘자, 일간지 음악 담당 기자, 예술가협회 음악 분야 책임자 등을 맡으며 스웨덴이 아닌 체코 음악계에서 활동영역을 넓혀 갔다. 그러나 이런 대외적인 활동보다 의미 있는 것은 스메타나가 오페라 작곡에 전념했다는 것이었다.

 

최초의 체코어 오페라

오페라가 처음 시작된 나라는 이탈리아다. 빈에서도 모차르트가 나오기 전까지는 독일어가 아닌 이탈리아어 오페라만 있었다. 모차르트는 오페라는 이탈리안이어야 한다는 통념을 깨고 빈에서 최초로 독일어로 된 오페라 곡을 쓴 작곡가였다. 19세기 당시 오스트리아제국의 식민지였던 프라하에서는 독일어 오페라와 이탈리아 오페라만 있었다. 그러나 민족문화 부흥운동이 일어나면서 체코 사람들은 체코어로 된 오페라와 연극을 보고싶어 했다. 체코어 전용 극장을 건립하려는 움직임도 이 때문이었다. 국민성금만으로 지어진 국립극장의 개관일은 1881년 6월 1일이었다. 프라하 시는 이 역사적인 개관일에 맞춰 오페라를 공모했다. 그리고 스메타나가 작곡한 <리부셰>가 당선되었다. <라부셰>는 보헤미안의 건국신화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오페라였다. 사실 스메타나는 <라부셰>를 1869년에 쓰기 시작해 1872년에 이미 완성해 놓고 있었다. 그러나 곡을 다 써놓고 9년 동안이나 공개하지 않았다. 그만큼 스메타나는 체코어 전용 국립극장의 개관을 손꼽아 기다렸던 것이다.

스메타나와 프라하 시민 모두가 손꼽아 기다린 국립극장이 <리부셰>와 함게 개관되었지만, 두 달 만에 불에 타버렸다. 그러나 재건축에 필요한 자금이 6주 만에 모였고, 2년 뒤인 1883년에 다시 개관식을 가졌다. 이 때도 <리부셰>가 개관기념 오페라로 채택되었다. 국립극장의 설립 의의와 스메타나의 의지-보헤미안을 위한, 보헤미안에 의한 음악을 국립극장의 개관식에 올리고 싶은 의지-가 통하게 된 것이다.

프라하 국립극장 (Flickr)

 

지금은 국립극장이 프라하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변모했다. 매일 오후 7-8시경 1만원 이내로 볼 수 있는 공연을 상영하며, 그날 공연 스케쥴은 아침에 확인 가능하다. 공연장은 언제나 관광객으로 붐빈다. 물가가 싼 프라하에 사는 지역 주민들이 1만원 내외의 공연을 보는 것은 부담스럽지않을까 싶다. (우유 한 팩에 1천원 정도, 크루아상은 2-300원)

사실 국립극장뿐만 아니라 프라하 자체가 관광객을 위한 곳으로 변해 왔고, 또 변하고 있다. 펍이나 레스토랑, 카페는 골목골목마다 즐비하지만 정작 지역 주민을 위한 문구 가게나 저렴한 식당은 거의 없어 보였다. 스메타나는 보헤미안 민족을 위한 '민족 음악의 창시자'로 알려졌지만 그가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는 덕분에 이제는 한 명의 유명한 음악가가 되었다.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나는 잘 모르겠다.

 


스메타나 동상 (Flickr)

 

프라하의 스메타나 뮤지엄  (Flickr)

 

참고 문헌

조성관 <프라하가 사랑한 천재들>

김규진 <프라하-매혹적인 유럽의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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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정들이 더 가관이네용

 

엄머 창피해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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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개꾸엉
여행/2012 동유럽2012. 7. 15. 00:03

 

 

1. 빈 Wien

타펠 슈피츠  Tapelspitz

 

뜨거운 철판에 나오는데 저기 데이면 세상 어느곳에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뜨거움을 느낄 수 있다 ㅋ 

 

샐러드 바, 1인에 6-7유로, 야채밖에 없다

타펠 슈피츠 수프 개인 그릇

타펠 슈피츠 고기를 앞접시에 덜어 먹는다

 

고기와 함께 들어 있는 뼛조각이 있는데 이 가운데 부분의 지방을 파서

함께 나온 바삭한 빵에 발라 먹는다

플라슈타라는 가게가 빈에서는 가장 유명한 것 같다. 사전에 전화로 예약한 후 방문하자!

 

 

맛 : 갈비탕의 고기를 접시에 썰어서 소스에 찍어먹는 기분이다. 먹는 방법이나 생김새, 서빙해주는 과정 등이 특별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그게 맛에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다. 맛은 생각보다 평범하다. 그저 로컬 푸드를 먹는 특별한 기억을 남기기 위해 먹는 것 같다.

가격 : 비싸다. 타펠 슈피츠를 파는 레스토랑이 기본적으로 저급한 곳은 아니기 때문이다. 둘이 먹으면 50유로, 한사람당 음료 하나씩 시키고 샐러드바, 팁 포함해서 약 8-9만원이 나온다.  딱 타펠슈피츠만 먹으려면 20유로(3만원)으로도 충분하지만 그 식당엔 아무도 그렇게 먹는 사람이 없었다.

리뷰 : 우리나라 갈비탕 혹은 설렁탕과 비슷하다. 국물은 갈비탕이고, 고기는 설렁탕이다. 소의 엉덩이 살이라는데 육질은 설렁탕 고기와 거의 비슷하다. 부드럽고, 설렁탕 고기보다 두껍다. 이 고기를 앞접시에 덜어서 썰어 함께 나온 소스에 찍어, 함께 나온 볶은 감자와 곁들여 먹는다. 수프에 뼛조각을 하나 넣어주는데 그 뼈 속에 있는 지방을 나이프로 덜어, 바삭하게 구워 나온 빵에 발라 먹는다. 왜 이걸 빵에 발라 먹어야 하는지 모르겠을 정도로 맛은 없다. 그러나 그냥 인상깊은 기억을 주기 위해 그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너 슈니첼  Wiener Schnitzel

 

레몬 조각, 크랜베리 잼과 무설탕 머스타드 소스 몇 가지가 함께 나온다

슈니첼의 사이드디시로는 볶음밥이나 으깬 감자 샐러드가 나온다

 

 

맛 : 괜찮다. 그러나 돈가스에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특별한 음식은 아니다.

가격 : 저렴하다. 도시에 따라 다르지만 프라하나 부다페스트, 자그레브같은 곳에선 5천원 안팎으로 먹을 수 있고 빈이나 오스트리아에서는 8천원 안팎으로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리뷰 : 빈의 유명한 음식을 꼽으라면 타펠슈피츠보다는 슈니첼이다. 이건 돈가스같은 느낌인데, 솔직히 김밥천국 왕돈가스가 더 바삭하고 잘튀겨져있다. 이건 잘 하는 집에 가야 맛있는 듯. 원래는 송아지(kalf)를 쓰지만 요즘엔 돼지나 치킨으로도 많이 만든다. 나는 자그레브에서 먹었다. 비너 슈니첼이라는 이름답게 빈에서 먹어줘야했나보다. 그저 그랬다. 싼 값에 고기를 먹고 싶다면 추천!

 

 

2. 프라하

꼴레뇨 Kolono

(사진을 아직 못 올렸습니다. 곧 업뎃할게요~!)

맛 : 돼지 족발 맛이다. 맥주 안주라 조금 짜고 기름지다.

가격 : 비싸지 않다. 둘이서 골레뇨 하나 시켜서 먹어도 배부를 정도로 큰 고기가 나온다. 꼴레뇨 하나당 1만원 내외로 먹을 수 있다.

리뷰 : 족발이 최고다. 썰려 나오는 족발에 김치나 야채를 싸 먹는 게 훨씬 입맛에 맞다. 꼴레뇨는 맥주를 마시기 위해 먹는 요리이기 때문에 맥주가 홀짝홀짝 잘 들어가도록 짜게 나온다. 길거리에 한 마리에 6천원에 파는 닭, 그 닭을 돌리는 기계에 돼지 무릎 부위를 돌려 구워서 껍데기에 소금으로 간을 하고 구워서 피클이나 야채와 함께 준다. 느끼하고 족발보단 별로다.

 

3. 부다페스트

굴라쉬 수프 Goulash Soup

 

 

 

 

맛 : 우리나라의 육개장과 비슷하다. 육개장과 같은 매콤하고 빨간 육수에 기름이 약간 떠 있고, 감자와 고기가 깍둑썰기로 들어가 있다. 가끔 헝가리의 고추가 들어가 있기도 하다. 얼큰해서 밥이 생각나지만 헝가리에선 바게트를 굴라쉬에 찍어 먹었다.

가격 : 저렴하다. 거의 모든 레스토랑에서는 메인이 아닌 starter취급을 해서 2-4천원 내로 먹을 수 있다.

리뷰 : 부다페스트에서 두 곳, 프라하에서 두 곳에서 먹어 봤는데 원조 굴라쉬 고향인 부다페스트보다 프라하에서 먹은 굴라쉬가 더 맛있었다. 마치 우리나라에서도 일식과 중식 전문점이 많듯, 이들도 헝가리 수프인 굴라쉬를 독일과 오스트리아, 크로아티아와 체코 등 주변 국가의 어느 레스토랑에서나 많이 팔고 있었다. 이런 걸 먹으면 정말 유럽이나 아시아나 입맛이 거의 다르지 않다는 걸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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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2012 동유럽2012. 7. 13.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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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2012 동유럽2012. 7. 12. 22:21

원래는 오늘 오전에 스카이다이빙을 하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먹구름이 끼고 비가 내리더니 다이브가 취소됐다. 오후에 한 번 더 갔으나 내일로 미뤄졌다.

내일 출국전까지도 못하면 정말 울지도 모른다.

이번 여행에서 너무너무 하고싶은던 것이라...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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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개꾸엉
여행/2012 동유럽2012. 7. 12. 07:42

늙고, 고생하고, 그러나 성숙하게 하는 데에는 여행이 최고

Backpacking makes you older, troubled, but being grown up.

 

 

연륜은 단순한 나이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경험이라는 외부자극에서 오는 것이다. 그걸 생각이나 말, 글로 한번 더 잘 다듬는다면 이 외부자극은 깨달음이 된다. 비행기에서 뇌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뇌는 한 번 가 본 적이 있는 곳이나 본 적이 있는 사물에 대해서는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을 사용해서 처리한다고 한다. 익숙함을 느낀 것에 대해서는 뇌도 열심히 대응하지 않는 것이다.

 

‘Being experienced’ is not a matter of how old you are. It comes from outer simultation, in other words, various experiences. If this is conformed into thoughts or words, this outer simultation become realization. In flight, I’ve seen a documentary film about brain. According to that movie, brains don’t use their conciousness but unconciousness for something already experienced. In other words, they don’t make a lot of efforts to respond some familiar simultations. 

 

 

새로운 장소, 새로운 사람,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학기가 피곤한 이유는 그만큼 의식이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고, 그런 새로운 경험들로부터 깨달음을 얻는 데 에너지가 소모됐다는 뜻이다. 여행, 특히 해외 여행, 그 중에서도 상이한 문화권을 여행하면서, 거기다 모국어까지 쓰지 못하는 환경이 되면 이 완전히 새로운 외부자극은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깨달음을 준다.

 

The reason we get more tired about new places, new people, new experiences and new semesters is the proof that our conciousness is working well, and the energy was used for getting a realization from new simultations. Traveling, especially traveling abroad(better if it’s totally diffent cultural regions), and even if you can’t use your mother tongue, this totally new outer simultation offers some realization that you’ve never gone through before.

 

 

여행은 솔직히 말하면 고생길이다. 재미있는 순간보다는 고생스러운 순간이 더 많다. TV나 다큐멘터리에서만 보던 재미있는 장면들은 특정한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 뿐이다. 이건 내가 블로그에 포스팅하기 위해 각도와 빛조절을 신경쓰고, 사람들의 표정도 최대한 신경써서 영상과 사진을 찍으면서 절실히 느꼈다. 그냥 똑딱이를 들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싶은 지점마다 서서 사진을 찍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다. 성당이나 궁전은 책에서 본 것과 같고, 미술관 안의 작품들도 교과서에서 보던 그대로며, 로컬 푸드를 시켰다가 실패할 확률도 높다. 여행에서의 즐거움은 계획한 것들에서 이루어지진 않는다.

 

To tell the truth, I think, backpacking is not only filled with excite moment. That has more troubles and unanticipated changes, less fun. Buches of fun scenes on the book or TV show is made thing on some specific purpose. I realized this fact taking photos with so much care so as to post my blog. Even taking pictures with a handy camera with not much care is annoying thing, either. Expecting feeling before leaving, missing feeling after the journey and walking along some beautiful street, these might be all things we can enjoy.

 

 

그렇다고 여행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여행에서는 계획을 짤 때는 몰랐던, 기대하지 않았던 즐거움이 찾아온다. 안에 무슨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지 미리 공부한 뮤지엄보다는, 뮤지엄으로 가는 길에서 지나친 건물, 간판들을 보며 이국적인 분위기를 즐기게 된다. Mixed dormitory에서는 같은 방을 쓰는, 비슷한 루트를 다닌 외국 친구들을 만나 서로의 여행에서 무엇이 좋았는지, 여행을 하면서 뭐가 좋은지를 이야기하게 된다. 기차에서도 처음엔 6인실을 혼자만 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이내 새로운 여행자가 들어오면 인사를 하고 친구가 된다. 이런 것들은 계획에 넣지도 않을 뿐더러, 실제로 가보지 않으면 기대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기대하지 못한 순간들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But the point is, this less fun is also unexpected thing. So you never know how exciting it would be before you go through. Rather than the museum that you’ve studied what kinda art works they have, looking buildings and signs you’ve passed on the way to museum, you could enjoy exotic mood. In mixed dorm, you can talk to people around the world who’ve passed almost same route with you. You can talk with them about which was the most impressive place and what are we doing in our hometown. Likewise, in the train, at first you would want to be alone but after some traveler come in to your room, you guys can be friends. These things are not expected, and you never can expect unless you actually do. But from these unanticipated moments you may learn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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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개꾸엉
여행/2012 동유럽2012. 7. 11. 15:03

어젯밤 뮌헨을 떠나왔고

지금은 레겐스부르크라는 독일의 작은 도시에 있다

인천공항에서부터 안가져온 걸 알아챈 카메라 연결 코넥터는 아직까지 파는 곳을 보지 못했고

(사실 열심히 찾지 않았다)

결국 한국에 돌아가서야 사진을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24시간 뒤 아주 무시무시한걸 하게 된다

사고나지 않길 바라는 수밖에

ㅠㅠ

ㅎㅎㅎ

 

 

Posted by 물개꾸엉
여행/2012 동유럽2012. 7. 10. 08:47

암장에서 만난 aroh 오빠와는 몇번 만나진 못했지만 정말 크게 영향을 받은 사람 중 하나이다. 내가 글로벌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과, 미치게 좋은 것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 aroh상은 이 두 가지 느낌을 갖게 해 주었다.

Aroh Yamamoto, who I've met several times, is the one of who effected me a lot. He inspired me to want to be a global person and to have something I can crazy about.

aroh 오빠는 스스로를 클라이밍에 미친 '변태'라고 했다(한국말로 "변태"라고 직접 발음하시면서).  오빠는 주중에도 시간이 거의 안나지만 저녁이 비는 날이면 암장에 와 4-5시간씩 하고 집에 간다.

주말엔 토요일 아침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하루종일 볼더링을 하러 산에 간다. 요즘은 너무 무리해서 손목이 다쳐서 두 달째 클라이밍을 못하고 있는데 클라이밍을 할 수 없어 너무 힘들다고 한다.

He called himself as a 'Byuntae' crazy about climbing. (He pronounced exactly in Korean) He is fucking(in his words :-b) busy and hardly has spare time in weekdays, but if he got some free time he come to climbing gym and stay 4-5 hours.

In weekend he only do climbing from Saturday morning to Sunday night. Thesedays he got a pain in his wrist so he can't go to climbing. He said he's going through very hard time because he can't climb.

 

그 정도로 '미칠 수 있는' 취미를 가지는 게 얼마나 부러운 건지!

I envyed him. He has something he can crazy about.

그런데 나도 그 느낌이 뭔지 알 것 같다. 이 형언할 수 없는 자유로움은 정말 겪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내가 누군지, 어디서 왔는지, 서울에선 뭘 하는 사람인지와는 상관 없이 세상과 사람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인연을 맺을 수 있다.

However I could know what kinda feeling that he said is. This undescribable freedom, you never know until you feel this. Without considering who am I, where am I from, what I am doing in my hometown, I can make a connection with people who are interested in the world and people.

 

보통은 이쯤 놀면 노는것도 지겨워져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지금 전혀 그렇지가 않다. 너무 행복하다. 마침내 정말 미칠 수 있는 것을 찾은 것 같아 행복하다.

I am not sick of hanging around without any tasks unlike I've been used to be. I am happy now. I finally found something that I can crazy about.

사진을 올릴 수 없는, 아쉬운 대로 그동안 찍은 먹을것 사진 몇 장 올립니다.ㅋㅋ

 

 

부다페스트의 평범한 닭가슴살 요리

 

프라하의 칼루아 카페

 

헝가리의 굴라쉬 수프와 샐러드

 

 초코+밥(초코밥?! 초코죽?)

 스위스 친구가 만들어준 traditional dish (감자 버터 요리?!)

조식 뷔페

 

오스트리아의 플라슈타 (갈비탕)

:)

 

Posted by 물개꾸엉
여행/2012 동유럽2012. 7. 9. 13:49

여행의 괴로움 선택의 실패

Annoying things of journey ; The failure of making a choice

 

 

1)    호스텔 고려사항

숙소는 bed bug를 고려하여 반드시 다음의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

 

* 나무에 서식하는 bed bug를 피하기 위해 철제 혹은 MDF소재의 침대를 선택한다

* 오래되고 낡은 가구를 쓰는 곳은 피한다

* 이것을 사진으로나마 알아차리는 방법은 어두울 때 조명을 이용해서 방의 분위기를 낸 사진을 쓴 호스텔을 피하는 것이다. 대부분 채광과 시설에 자신있는 호스텔은 대낮에 최대한의 채광을 이용해서 사진을 찍는다.

* 시설이 신식이어도 구식 건물을 리모델링해 쓰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오래된 목재 건물이 많은 부다페스트, 프라하 같은 도시에서는 아무리 시설이 깨끗해도 bed bug나 벌레가 많다

 

1)    Accomodations

You must think about following thing in order to avoid bed bugs

Choose steeled or MDF-made beds, not wooden beds.

Avoid hostels have old furnitures.

When u want to notice these things, do not choose hostels using pictures of dark room with lights. Most of hostels have good sunlights and furnitures don’t take a picture like that.

Though furnitures or interiors are newly designed, most of hostels are located in old building. In this case, like in Budapest or Prague, there still are bed bug things.

 

Street name을 끝까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이건 Street name에 익숙치 않은 우리나라 사람들에 해당되는 팁)

부다페스트와 비엔나에서 이런 경험을 했다. 부다페스트는 거리 이름 뒤에 ter ut가 붙는데, ter ut가 달리 붙어있어도 Babaros라는 이름이 붙어 있으면 당연히 같은 거리일거라고 생각했다. 우리말로 잔다리로잔다리길과 같이 쓰는 것처럼.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아침 8시 반에 부다페스트 역에 도착하고, 역과 도보 3분 거리에 호스텔을 잡았지만 babaros 거리가 온 사방으로 퍼져 있었고 결국 나는 11시가 다 돼서야 체크인 할 수 있었다. 두 시간 넘게 캐리어를 끌고 부다페스트의 땡볕을 돌아다닌 것이다. 결국 절대 안쓰기로 했던 국제전화 찬스를 써서 전화를 걸었고, 호스텔의 리셉션 보이가 마중을 나와 들어갈 수 있었다. 아마 리셉션 보이가 없었으면 절대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큰 건물에 간판도 없이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가정집을 불법으로 개조해서 호스텔로 쓰는 것 같았다.

 

비엔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Lerchenfelder Gürtel 26번지에 있는 호스텔이었는데, 뒤의 Gürtel은 신경쓰지 않고 L로 시작하는 큰 길만 찾았다. 그래서 L~ 길의 125번지에서 시작해서 26번지까지 걸어갔다. 건물 하나당 1~2번지니까 엄청 걸은 것이다. 막상 26번지에 다다르니 그 가게가 뭐하는 가게인지 모를 정도로 간판도 없고, 앞의 메시지도 다 독어로 써 있었다. 그 앞에서 무작정 벨을 누르고 기다렸다. 느낌이 이상해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아 이 가게가 뭐하는 가게냐고 물으니 클라이밍 센터란다. 그제서야 잘못 왔다는 걸 알고 전화 찬스를 또 썼다. 그랬더니 완전 다른 스트리트에 있었다. 그렇게 나는 밤 10시에 비엔나에 도착했지만, 12시가 넘어서야 체크인할 수 있었다.

 

이미지에도 보이겠지만 한 역에서 두 큰 길이 뻗어 나가는데, 그 두 길 모두 이름이 Lerchenfelder. 하나는 Gürtel, 다른 하나는 Strasse. 나는 Strasse를 갔고, 호스텔의 위치는 A로 표시된 곳이었다. 오스트리아는 지하철 출구에 번호가 없고 스트리트 이름으로 출구를 구분하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잘 신경써야 한다.

 

 

2) 음식

여행책자에 있는 곳도 실패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여행책자를 쓴 저자들도, 물론 유명한 집을 알고 가는 경우도 많겠지만 그냥 여행하다 끌리는 맛집을 들어가 보고 사진을 찍고 글로 쓰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여행책자와 블로그 리뷰, 현지인의 리뷰(구글링)를 잘 보고 가야 한다. 음식 하나에 보통 1만원 하는 곳이 유럽인데, 실패해서 거의 먹지 못하면 그만큼 짜증나는 일도 없다.

 

2) Foods

You can fail to choose the retaurant even introduced in travelers’ book. During the travel, writers of those books could drop by any place they want to challenge, even if that choice goes to faliure, they take some pictures and write a review. So if you don’t want to fail, you must consider both travelers’ book and other reviews on the web.

 

  

3) 미술관

이건 개인적인 견해지만 유럽에서 국립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안가는 게 나은 것 같다. 혹시 프랑스의 루브르를 이미 봤다면 더더욱 안가는 게 나을 것이다. 국립 미술관과 박물관은 보통 제국이던 시절에 수집한 다른 나라 유물과 자국 유물들을 전시하는데, 새로운 예술적 감각을 통해 수집했다기보다는 왕조나 제국의 취미대로 막 수집한 경우가 많아서 재미도 없다. 그저 시대나 화파, 지역별로 나눠서 전시할 수 있을 뿐이고, 사실은 별 주제도 감흥도 없다. 사실 나는 누군가 개인이 자신의 취향대로 모아 놓은 콜렉션을 2만원씩 주고 가서 구경해줘야 한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라에서 미술관과 박물관을 짓는 목적은 거의 비슷하며, 사람들은 그런 의도보다는 나도 이 곳에 가봤다는 감흥을 위해 가는 경우가 많다. 이런 감흥이 절대로 2만원의 값어치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곳에 가면 그냥돈을 쓰게 되므로 가기 전에 다시 한 번 고려해보자. 그 돈으로 지역 음식을 먹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아니면 파리의 경우 루브르보다는 퐁피두를, 영국의 경우 내셔널 갤려리나 대영박물관보다는 테이트 모던을 추천!)

 

3) Museums

This can be kinda individual perspective. I think you’d better not to go national museum. If you’ve gone to Louvre, you don’t have any good reason to go those places. National museums usually exhibit their country’s things or things from other cultures that they collected in their empire days. Basically they don’t collect those things for some artistic sense, but for their empire’s favors. So that favor can’t content young people in this century. They only show their collections dividing in ages, regions and groups, not in special perspectives. I couldn’t understand I should look over their “great” collections paying 20 dollars. The reason that most of countries make museums is very similar to each other, and people are not interested to that fact. They just go there and they want to think themselves a educated people. National museum’s exhibitions never worth 20 dollars. That’d be better to eat some local food and pay 20 dollars.

 

 

4) 체력 고갈과 미션 완료의 사이에서

가끔 가기로 목표한 곳을 모두 가느라 다리와 허리가 너무 아플 정도로 걸을 때가 있다. 나는 언제나 미션 완료를 지향했지만, 그러다가 정말 다음날의 여행이 괴로울 수가 있다. 첫날 체력이 좀 된다고 절대 무리하지 말자. 나이가 들수록 다리도 다리지만 많이 걸으면 허리가 아프다. 기침이라도 나오면 죽을 것 같다. ㅎㅎ

 

4) Making a good choice between exhausion and Mission competing

Sometimes your legs and back would kill yourself because of too much walking. I’ve always choose to complete missions, but it lead me to more painful trip the next day. Do not overreach yourself even though you’re okay in the first day. And getting older, your back would be more serious problem than your legs. It will kill yourself when you snee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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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개꾸엉
여행/2012 동유럽2012. 7. 7. 06:33

Peter씨의 가족을 만난 아침 기차

Train journey with Dr. Perter and his family

 

혼자 6인실 칸에 앉아 있을 때였다. 부다페스트에서 자그레브로 가는 기차에서 일가족이 내가 있던 칸에 탔다. 내가 내 캐리어를 치우기 위해 가방을 올리려 하자 그 가족 중의 아버지가 도와주셨다. (보통 잘 안도와주시는데 도와주셨다.)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 분이 나에게 중국인이냐며 말을 걸었다. 나는 South Korea에서 왔다고 답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대화가 지속되었다.

 

I was sitting alone in a room for 6 people in train to Zagreb. A family took in my room. Noting that I have to get my luggage away, the father of that family helped me. The mother of that family asked me if I am a Chinese. That was the beginning of our talking.

 

 

노르웨이에서 온 가족이었다. 중학생쯤 돼 보이는 남자아이 둘과 초등학생 여자아이 하나,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 이렇게 다섯 명의 가족이었다. 북유럽 끝자락에 있는 노르웨이의 오슬로에서 출발해 몇 개 도시를 거쳐 남부유럽인 자그레브로 가는 길이었다. 온가족이 몇 주간의 휴가를 같이 가다니, 이것 역시 우리나라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They were Norwagian. Two boys look like middle school students and a little girl, and father and mother, they were the family. Departed from Norway, located in the end of the Northern Europe, and passing couple of cities and now they were going to Southern Europe, Zagreb. All the family members are enjoying vacation together for couple of weeks. That’s only imaginary thing to Korean.

 

 

 

자긍심을 가져도 되는 나라 한국

Korea worths for a pride

 

가족의 아버지 Peter씨와 나의 대화의 대부분은 한국의 근대사에 관한 것이었다.

 

I and Dr. Peter, the father of the family, talked about Korean modern history.

 

노르웨이. 우리나라와 정치적으로 가깝지도 않고, 국제적인 이슈도 많지 않아 신문의 국제면에서도 보기 힘든 나라다. 사실은 1인당 GDP 2(1위 룩셈부르크)에 실질적인 삶의 질이 높다. 태평양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는 미국과 중국, 자원과 종교 문제 때문에 말썽인 중동, 금융 및 재정 위기 때문에 나날이 위태로운 유럽국가들과는 상관없이 조용히, 유유하게 잘 살고 있던 나라. 50%에 육박하는 세금을 내면서도 복지와 삶의 수준에 만족하고, 물가가 비싸도 임금이 높아 해외 여행을 가면 모든 것이 너무

저렴하게 느껴진다는 것이 Peter씨 가족의 증언이었다.

 

Norway. Not that close to Korea in both diplomatic and trade things. And even that country has no big issue so we can’t notice their updates on newspaper. But Norway is the second country in GDP per one so their quality of life is high. They pay taxes almost half of their earnings but they highly satisfied with their welfare and life. And they are okay with their high prices because they make money by that much. So they don’t feel big burden because most contries are cheap to travel.

 

 

우리는 노르웨이의 역사를 잘 모르는데, 이 사람들이 이토록 한국 근대사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Peter씨는 나도 몰랐던 한국전쟁 당시의 한국과 노르웨이의 친분 관계를 설명해 주었다. “당시 노르웨이에서 600여명의 의사가 파견되어 우리나라의 9만 참전군인을 돌봐서 살렸다. 전쟁 후 한국은 아무것도 없었다. 거의 모든 기반시설과 문화유산이 파괴되었다. 그런데 이후 한국은 선박 산업을 시작으로 중공업 산업에서 세계의 중심에 설 수 있었다.”

 

I was surprised that he knows well our modern history. And he also told me some relationship between Norway and our country during the Korean War. “In that time over 600 Norwagian doctors came to Korea and saved over 90,000 soldiers. After the war, Korea had nothing. Almost all infrastructures and cultural inhertances were destroyed. But afterward, Korea started to make ships. afterward, Korea became a strong country in heavy industry.”

 

 

선박 산업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중공업과 경공업까지도 한국은 후발 국가였다. 그나마 일제 강점기 때 철로와 공장을 짓지 않았다면 우리나라의 산업 발전은 더 느려졌을지도 모른다. 자원도 기술도 자본도 없는 상태에서 한국은 근면한 노동자와 중앙집중적인 계획경제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Peter씨는 그것을 이룬 세대가 우리 부모님 세대이며, 그것을 자랑스러워 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너는 자랑스런 한국인이다. 세계 어디에도 그런 유례가 없다. 너희 부모님은 세계 어디에서도 이루지 못한 경제 성장을 이룬 기적적인 세대다.”

 

Not only shipping industry, Korea was a backward country in most of industries. I think is the only good thing that the Emperialist Japan did in Korea, built railways and factories. Thanks to that we could eccelerate development. Without any resources and capital, Korea achieved great development owing to diligent workers and centralized planned economy. Dr. Peter said this success owes our parents’ generation and we must be pround of that. “You are Korean, and be pround of having that history. That is the only case, there’s no case like your country’s in the world. Your parents’ generation made it.”

 

 

배운 것이지만 외국인이 이것을 인정해주니 감회가 남달랐다. 한국 사람들이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는 것보다 훨씬 객관적이기 때문이다. Peter씨는 특히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를 함께 이룬 것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중압집중적인 경제성장은 대부분 사회를 통제한 상태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거꾸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경제 성장의 끝에 민주주의를 쟁취했고, 그 뒤에도 후퇴하지 않고 계속해서 발전해나간 나라다. 다른 나라가 200-300년에 걸쳐 이룬 경제성장과 정치 발전을 20-30년 만에 이룩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고등학교 역사 시간에 그렇게 지겹게 듣던 내용인데, 마치 나는 이 이야기를 처음 들은 듯 감동을 받았다. Peter씨는 이런 나를 보며 아빠미소를 지었다. 나도 딸내미 미소를 지어 보였다.

 

That is what I already know well, but when he told me that, I felt something I’ve never felt before. His perspective is far more objective. He also mentioned Korea achieved both economic development and democracy. Most of centralizly planned economies achieved in highly controlled society. So democracy goes backward. But our country achieved democracy, in the end of the economic development, and keeping on and on. That was what I was alredy told in my history class, but as if I’ve never been heard, I was so touched.

 

 

Peter씨 가족은 작년에 서울에 왔다고 한다. 서울과 부산 등 한국에서만 3주 가까이 지냈다고 했다. 특히 서울을 세계에서 가장 모던한 도시 가운데 하나라고 말해주었다.

 

He and his family have been to Seoul last year. They stayed 3weeks in Korea. He said Seoul is the most modern country in the world.

 

 

 

따뜻한 피터씨 가족

Warm-hearted family

 

나는 이 가족이 너무 좋아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던 나가사키 짬뽕 컵라면과 양갱, 만쥬 등을 아이들 손에 쥐어주었다. 사실 컵라면은 내가 먹으려고 가져온건데 뭔가 큰 걸 주고싶어 그냥 내어주었다. Peter씨는 보답으로 노르웨이에 이변 겨울에 놀러 오면 같이 스키를 타러 가자고 했다. 이윽고는 아예 노르웨이에 공부를 하러 오라고 하셨다. 그러면 집을 제공해 주시겠다고. 노르웨이는 모든 대학이 무료이고 대학생도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으니 괜찮을 거라고 하셨다. 10분 정도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마음만 받기로 했다.ㅎㅎ

 

I liked this family so I gave them the last item I have. That was a cup noodle(that’s very new) and some breads. Actually the cup noodle was for me, but I wanted to give them something special. Dr. Peter invited me to come Norway this winter and go ski together, for a kinda reward. That was a super huge reward. I really appreciate that.

 

 

여행은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을 보러 가는 것이지만, 역설적으로 그것들을 통해 나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저 잘사는 북유럽 국가로만 알고 있던 노르웨이,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의 원 제목인 노르웨이의 숲에서나 익숙하던 나라. 이 나라의 사람들이 한국인으로서의 나, 그리고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다시 일깨워주었다.

 

Journey is to see other countries and other kinda people. But paradoxically because of those things I can discover myself, my lifestyle, and my country. Norway, I’ve never known but some reach country in Northern Europe and the novel title of haruki, people living here awakened me as a Korean.

 

 

기차는 곧 자그레브로 도착했다. 6시간이 흘렀다. 잠을 전혀 자지 않았지만 피곤하지 않았다.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다. 나는 자그레브에 머물 것이었지만 이 가족은 자그레브에서 베니스로 가는 기차를 다시 타러 간다고 했다. 우리는 역 앞의 작은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같이 했다. 정확히는 이 가족이 나를 초대해주었다.

 

Train arrived to Zagreb soon. 6 hours gone. I never slept but I wasn’t tired at all. It was very meaningful time. I was staying Zagreb but they had to go Venice. They invited me to their family lunch around the train station.

 

 

우리는 그렇게 아쉬운 작별 인사를 했다. Peter씨는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를 읽어 보았냐며, 안읽었으면 꼭 읽어보라며 추천해 주셨다. 이 소설이 지난해 전세계로 수출해 대박을 터뜨렸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났다. Peter씨가 오늘 권하고, 1년 전에 기사가 나에게 이 책을 권했고, 그보다 더 1년 전에 엄마가 나에게 이 책을 권했는데. 엄마가 권할 때 읽을 걸 그랬다.

 

After eating we made our farewells. Dr.Peter recommended me writer Shin’s novel <Take care of my mother>. I’ve read some article that says this book exported abroad and many people liked that. Peter recommended me that today, and 1 year ago the article recommended me, and more 1 year ago my mom did that ei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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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개꾸엉
여행/2012 동유럽2012. 7. 6. 23:11

너무 좋다.

돈만 많다면 직업으로 backpacker를 하고싶다

9할이 고생이지만 너무 좋은 그 1할의 순간 때문에 여행을 하나 보다

쇼핑, 셀카, 미술관 방문보다

미지의 영역을 탐험해서 알아낸 것 같은 묘한 즐거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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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개꾸엉
여행/2012 동유럽2012. 7. 5. 02:55

오늘로 5일째.

첫날보다 점점 나아지고 있다.

두려움, 불안함, 실망 등의 감정이 여유와 즐거움으로 바뀌고 있다.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

홍콩, 크로아티아, 중국, 미국, 베트남, 호주, 스웨덴, 노르웨이의 친구들이 생겼다.

(친구들에게 하나씩 주려고 싸온 양갱과 만쥬, 명함이 다 떨어졌다. 이제 4일인데ㅠ)

특히 노르웨이는 한 가족을 통째로 알게됐는데 (아침에 기차를 타면서 6인실에 같이 탔다)

덕분에 6시간의 기차가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생각한 것, 느낀 것, 하고싶은 말과 쓰고싶은 글이 너무 많아서 과부하가 걸릴 것만 같다 ㅎㅎ



여행의 즐거움은 당시엔 모른다. 너무 덥고, 다리가 아프고, 가끔은 음식이 입에 안맞을 때 짜증나기 때문에.

게다가 저예산으로 유럽을 갈 경우, 새로운 도시로 이동했을 때 묵게 될 숙소 앞에서 건물을 올려다 봤는데 엄청 오래된 건물일 경우, 그 무지의 두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호스텔을 세 군데 갔는데 세 군데 모두 왜이렇게 오래된 건물에 있는지?! -0-


야간열차의 열차 종류나 wagon도 복불복이다. 보통 도착하는 도시의 열차가 와서 데리고 가는데, 나는 부다페스트로 갈 때 타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기차를 탔다. (후지다는 말이 자꾸 나오려고 한다 ㅠㅠ)

죽기 직전에 타서 ㅋㅋ 쓰러져 잘 수 있어서 나름 더러워도 괜찮았지만. 춥고 적적할 때 탔던 기차가, 햇살에 일어나 보니 푸른 들판을 달리고 있었다면. 그리고 내가 처음 온 나라, 처음 온 도시에 도착해 있다면! 비록 샤워하고 갓 나온 설렘은 아니지만 (ㅋㅋ 나는 더러운 상태지만..) 느껴본 적 없는 설렘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난 야간열차에서 드디어 bed bug를 만났다.

세균에 민감한 나였지만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유럽의 벼룩과 bed bug의 세계에 그렇게 뛰어들었다.

그리고 물렸다.

이젠 두려울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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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개꾸엉
여행/2012 동유럽2012. 7. 4. 05:47

여행 4일째.

여행이 길어지니 점점 외로워지고 있다

정말 여행은 다른 세계를 탐험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한 것 같다

이전엔 몰랐는데 이번에 절실히 느낀다

한인민박 안끼워넣은걸 후회하고도 있다

ㅋㅋ

 

그러나 앞으로 또 여행할 일이 생겨도 한인민박엔 안가리라

 

내일은 아침 6시 기차다!

4시엔 일어나야 하는데

지금은 12시를 향해 간다

일어날 수 있을까..

 

 

 

 

사진은 오늘 먹은 굴라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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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개꾸엉
여행/2012 동유럽2012. 7. 3. 05:53

8시 반에 도착해 22시 50분인 지금까지 약 14시간을 부다페스트에 있었다.

도로체계가 프라하처럼 쉽지 않고 들쭉날쭉하고 같은 길이 끊겨있다가 다시 생기는 등

============== +++++++++++++++ ==============

A가                  B가                   A가

(이런식으로.. 왜 이런건지 모르겠다)

힘들었다.

덥긴 프라하보다 더 덥고 사람들은 더 불친절하고 영어는 더욱 안통해서 당장이라도 다시 프라하로 가고싶었다

그렇게 싫던 프라하였는데 ㅋㅋ 그래도 프라하는 영어를 여기만큼 못하진 않았는데.

어쨌거나 해가 지기 전까지는 부다페스트는 모든게 최악이었다

여행이 이런거구나 싶을 정도로!

 

숙소로 올라오는 길에 배가 고파서 요거트를 하나 골라왔는데

뚜껑을 열어 먹어보니 바닐라밥이었다

바닐라죽? 바닐라밥?

뭐 그런 것.

바닐라 맛이 나는 슈크림인데 거기에 죽같이 눅눅한 밥알이 들어가 있다

처음엔 이상했는데 중독성이 있어서 자꾸 먹게 됐다

이거 명물이다

여기와서 본 미니 푸와그라 통조림(성냥곽크기) 이후 최고의 엽기 음식 ㅋㅋ

이거 많이 사가야겠다

사람들에게 신세계를 열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ㅋㅋ

쓸 글이 많은데

사진을 못올리니 올릴 수가 없다

같이 올려야하거늘!ㅎㅎ

 

여러분 쫌만 기다려주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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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개꾸엉
여행/2012 동유럽2012. 7. 2. 04:17

#1.

아.

글감 잔뜩 써놓고.

사진을 올릴 수가 없게 됐다.

사진 정말 블로그에 올릴거라서 신경써서 찍었는데.

나중에 몰아서 올리든가 해야겠다.

 

# 2. 심경 변화 과정

공항 : (불안) 그날 아침에 먹은 크리스피롤 1개가 소화가 안될 정도로 초조했음. 영어가 안통하는 동유럽, 소매치기와 집시가 많은 동유럽 등등.. 동유럽에 대한 오만 걱정들.

비행기 탑승 : (기쁨)막상 타니 신나고 좋음.. 근데 옆에 덩치큰 아저씨가 앉아서 가는 내내 화장실 가기가 힘들어서 불편.

착륙 직후 : (기쁨, 실감안남)천둥번개친다고 했는데 맑아서 기분 좋았음. 비행기, 입국심사, 시내로 가는 버스 모두 한국인으로 꽉 차서 실감이 안났음.

숙소 부근 지하철역 도착 : (초조)막상 나오니.. 도로명 보는 방법, 지도 보는 방법 하나도 모르겠고. 그래서 길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봤는데 말이 하나도 안통함. 영어로 물어보는 체코어로 답하거나 대답을 안함. 공항에서보다 더 불안, 초조해짐 ㅋ

어렵사리 숙소 도착 : (실망)12인실 괜히 예약했나 싶을 정도의 실망감이 들었음. 사실 4인실이나 12인실 모두 불편하긴 매한가지인데 12인실에 11명의 백인들이 짐을 아무렇게나 풀어헤쳐서 바닥에 발 디딜 곳조차 없었음.

짐 놓고 밖으로 나감 : (씐남) 베네치아랑 비슷할 정도로 건물 하나하나가 예술적으로 예쁨. 규모나 물가로만 보면 베네치아보다 프라하가 더 좋은 것 같음. 너무 멋있고, 낭만적인데다, 사람들도 활기차고!!

맥주집 : (실망) 드디어 프라하에서의 첫날 흑맥주를 맛보기 위해 숙소 근처 펍을 들어감. 여자 혼자 왔다고 아저씨가 바가지 씌움. 항의할 수도 없었고 기가 막혔음. 맛은 그냥 그랬음. 기대하지 말걸ㅋ

숙소 : (피곤) 11시 도착. 비행기에서 거의 못잤으니 실제로는 한국 시각인 새벽 6시까지 거의 밤을 지새고 돌아다닌 것임. 글챌 갔을 때도 잠이 제일 없던 나였는데, 밤에 잘 시간 쪼개서 영상 만들고 그랬는데 정말 미친듯이 졸렸음. 그러나 이대로 잘 순 없었음. bed bug가 무서웠기 때문... (경훈이에게 얘길 들은 이후 공항에서 1만원을 주고 베드버그 칙칙이까지 사감 ㅋㅋ 이것도 바가지 요금) 베드버그 칙칙이를 샤워한 후 온 몸에 뿌리니 샤워 괜히 했나 싶을 정도로 찝찝했음.ㅠㅠ 그리고 천장을 샅샅이 뒤져 하얀색 이(이인지 벼룩인지)와 검은 정체모를 벌레를 모두 죽이고 잠. 정말 많았음. 내가 그 때 다 안죽였으면 우리방에 있던 사람들 물렸을것같다..ㅋ

기상 : (실망) 4시 기상. 시차적응이 너무 안돼. 그런데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와 천둥 번개. 오늘 가려고 한 곳 비 때문에 못가려나 싶어서 또 한 번 더 실망.

 

그러나 8시쯤 숙소를 나설 때 비는 오지 않았고

난 계획한 모든 곳+계획하지 않은 곳까지 가볼 수 있었다

무리한 덕분에

내가 지금 1km도 안되는 기차역까지

걸어갈 수 있을지도 스스로 모를 정도로 피곤하지만..

정말 자면서 걸은 것 같다

저녁 생각 없었는데

안먹으면 정말 기차역 가다가 도중에 봉변 당할 것 같아서

정신 바짝 차리고 스타벅스까지 걸어왔다

정가 제대로 계산해 주고 영어도 통하고 와이파이도 잘 터지는 스타벅스!!

정가, 영어, 와이파이. 솔직히 프라하같은 세계적인 관광지에선 상식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최소 조건이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선 왜이렇게 이 셋다 절대 안되는지 모르겠다

하루 반 있었지만 정말 다니기 힘들었다

영어만 통해도 이보다 두 배는 만족하겠다

 

애니웨이

유럽 여행에서

맥도날드와 스타벅스는 구세주다 정말

 

 나의 구세주 스타벅스. 여긴 캐리어를 맘놓고 놓고 있어도 된다.

프라하에서 몇 안되는, 여행자가 안전한 곳인듯..

날 살려준 스벅의 '프라하 농장 샌드위치'

 

샌드위치도 먹었고

이제 힘내서

역 가야지

야간열차 타러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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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나 반 고흐는 교과서에 나온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 이 두 화가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이 둘과 달리 클림트를 교실에서 가르치지 않은 이유는 그가 관능과 성적 욕망을 그려낸 화가이기 때문이다.

 

메타 디자인 학부생 클림트

우리에게 클림트는 그림으로 친숙하지만, 클림트는 공예와 장식미술 등 실용 미술 전반의 교육을 받았다. 오늘날로 치면 메타 디자인학부생같은 것이다. 그는 빈 공예학교에서 그림과 모자이크 기술을 배웠고, 이후 장식미술학교로 옮겨 장식과 공예, 회화를 익혔다. 학교를 졸업한 뒤 클림트는 동료, 친동생과 함께 쿤스틀러콤파니(화가 공동체)를 꾸려 본격적으로 직업 작가 대열에 뛰어들었다. 오늘날로 치면 디자인 컨설팅 업체인 것인데, 클림트의 쿤스틀러콤파니는 출판과 인테리어, 천장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닥치는대로 일을 한 클림트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뿐만 아니라 자신의 능력 또한 발전시켜 나갔다.

 

부르크 극장 천장화의 성공

그러던 중 클림트에게 결정적인 기회가 왔다. 환상도로변에 새로 들어선 부르크 극장 계단실의 천장화를 맡은 것이다. 쿤스틀러콤파니의 세 사람은 이곳에다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현대에 이르는 연극 장면들을 그려 넣었다. 이 천장화를 통해 클림트는 건축장식가로서 빈의 예술가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하게 된다. 그리고 곧 황제가 수여하는 예술가 최고의 영예인 황금공로십자훈장을 받게 된다. 이 때 클림트가 스물 여섯 살이었다. (1888)

2년 후 쿤스틀러콤파니는 빈 미술사박물관의 층계 기둥 등에 40점의 그림을 주문받는다. 1891년에 완성된 이 그림으로 클림트는 확고부동한 빈의 스타가 된다. 빈 상류사회는 그를 천재화가로 칭송했다. 하지만 클림트는 만족하지 못했다. 건축장식가로 데뷔한 자신이, 시류에 뒤떨어져가는 제국이 주문한 역사주의적 작품으로 이름을 얻었지만 기득권층이 요구하는 예술로서는 결코 시대를 앞서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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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어를 다 꾸렸다.

설레면서 무섭다.

일주일 전만 해도 마냥 설렜는데

사흘 쯤 앞두게 되자 출국이 현실이 되면서 좀 무섭기도 했다.

미국이나 서유럽이야 말이라도 통하지만

동유럽은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게다가 난 돈을 정말 적게 들고가기 때문에

챌린저 할 때처럼 돈으로 다 커버친다는 생각을 못 하겠다.

 

그래도

첫 여행보단 두번째에, 두번째보단 세번째 여행에

전에 느끼지 못했던, 여행의 새로운 즐거움을 느껴보고 왔으면 좋겠다.

 

현지인 친구를 만들고 온다든지

호스텔에서 처음 만나는 친구들과 돌아다녀 본다든지 하는 것들..!

 

 

페북 통해서

블로그 방문해 준

친구들 언니 오빠 동생들 감사해요

:-)

 

유익한 여행기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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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준비의 반이 일정짜기와 숙소 예약이었다면

나머지 반은 공부하기.

특히 음악가, 문학가 등 생소한 예술가가 많은 프라하와 빈. 두 도시의 인물들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영등포 교보문고의 바로드림 언니는 하루 걸러 들르는 나를 알아봤고

교보문고에서 배송오는 우체국 택배 기사님은

자전거 바구니에다 책 넣고 가달라는 나에게 매번, 분실해도 책임 못진다 하셨다가

이제는 그냥 자동으로 자전거 바구니에 넣어 주신다.

오늘 배송 온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비행기와 열차에서 다 읽는게 목표다.

온라인으로 7700원가량 하길래 얇은 책일 줄 알았는데 받아보니 500쪽 가까이 되는 책이다.

이런건 읽는 것도 문제지만 가지고 다니는 것도 문제다.

지난 유럽 여행 때도 책을 한 권 가지고 갔다가 독일 호텔에 버려두고 왔었다.

이후 독일-오스트리아-프랑스-영국의 미술관을 거치며 수집한 도록과 그림책을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버리고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엔 미술관에 안가니까 도록을 살 일은 없겠다.

가기 전에 공부하느라 책을 너무 많이 사서 통장 잔고가 13만원 남았다.

은행에 가서 10만원을 유로로 환전했다. 3만원은 오갈 때 공항버스비 2만원+ 1만원은 남은 3일 동안의 내 생활비다. ㅋㅋ

돈이 이렇게 없는 줄 모르고 잡았던 오늘과 내일, 모레의 약속을 모두 취소했다.

돈 때문만은 아니고, 읽지 못한 책을 좀 더 읽고 갈 여유가 필요하기도 했다. 

10만원을 바꾸니 65유로가 나왔다. 유럽에 가지고 가는 현금은 달랑 65유로다.

나머진 다 카드로 커버할 수 있을까.

 

못 먹으면 굶고, 트램이나 버스를 타지 못하면 걷는다는 각오로 간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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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개꾸엉
여행/2012 동유럽2012. 6. 22. 15:34

요 며칠 공부를 아예 안했다. 신문 사설 한 편도 들여다 보지 않았다.

여행이 일주일 남아서 숙소와 열차, 루트를 짜다 보니 그렇게 됐다. 노는 걸 계획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어디서나 잘 수 있고 열차 예약이 필요 없었던 미국과는 다르다.

성수기 유럽은 예약이 없으면 극기 훈련 수준의 고생을 할 수도 있다.

처음엔 비용을 아끼기 위해 체코, 오스트리아 등의 철도청의 홈페이지에서 직접 예매를 시도했으나

카드 오류라고만 뜨고 카드 오류가 뭐가 어떻게 잘못된 건지는 알아볼 방도가 없어

어머니께 부탁하여 신용카드까지 만들고(어머니가 가족관계증명서까지 은행에 가져가서 서울 우리은행으로 부쳐주셔서 만들어주신 카드..)

그 카드로 또 부랴부랴 예매했는데도 카드 오류라 그래서

일주일동안 체코 철도청을 즐겨찾기를 해 놓고 하루에 아침 저녁으로 두 번씩 예매 시도를 했었다

그러나 결국 안되고ㅠ

국내의 예매 대행 사이트를 통해 8EUR를 얹어 주고 예매를 하게 되었다

처음엔 예매 대행 사이트에서 말하길, 거의 모든 구간에 예매를 해야 한다는 식이었는데.

그래서 모든 구간에 좌석 예약을 하고 나니 티켓당 구매 대행료가 7EUR씩 붙어서 대행료만 6만원이 넘게 나왔다.

이거 무슨 표 예매 해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어이가 없었다.

프라하에 입국하자마자 기차역에서 모든 예매를 마치고 편안히 여행해야겠다.

현지에서 하면 예약비도 국내보다 싸고 예매 대행 수수료도 안 받지만 단지 만석이 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과 조금 맞바꾸면 된다. 내가 이동할 기차는 거의 새벽 6-7시 사이에 출발하는 기차라 만석이 될 것 같지는 않다.

 

 

 

현재 첫 6일을 위한 모든 호스텔과 동유럽패스, 야간 열차만 예약한 상태다.

호스텔을 예매했다 취소했다를 반복하니  결제 승인 취소 승인 취소 문자가 열 댓개가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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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개꾸엉
사사로운 글2012. 6. 18. 12:42

 

책읽기에 처음 꽂힌 건 2010년이다.

그전까지는 전공책 빼곤 거의 안읽었다.

책읽기의 필요성을 못 느꼈다.

그래도 웹상으로든 기사로든 text는 꾸준히 읽었다. 하루 5천 자 이상씩은 꾸준히 읽었을 것이다.

 

2010년 <삼성을 생각한다>를 처음 읽은 이후 책읽기에 재미를 붙였다.

그런데 전공이 전공인지라 거의 예술-미학-철학 쪽만 읽었고,

나의 제2의 관심사였던 정치학쪽만 읽었다.

교보문고에 가면 정치-철학-사회 분야인 'D'코너로 직행, 다른 곳을 돌지 않고 거기 앉아서 거기 있는 책만 보고 왔다.

 

이후 조금씩 읽는 책의 외연을 넓혔다.

경영은 피터 드러커, 소설은 이태준, 영화는 진중권, 역사는 유시민을 시작으로

작년부터는 경제, 금융, 세계사, 자서전, 과학, 법의학, 에너지 등 재미있어 보이는 건 '우걱우걱' 읽었다.

사실 무슨 분야든 책읽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던 게

학교 다니면서 읽었던 책이나 텍스트보다는 무조건 쉬웠다.

특히 미학책이나 예술학책을 읽으면서 한글인데도 해석이 안돼서 얼마나 애를 먹었던지.

1학년 개론 시간 때부터 융이나 에드워드 사이먼의 책을 읽고 발제를 했다.

미술사, 사상사적 지식이 전무한 상태였는데.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학교를 다니면서 말 그대로 '해독'하면서 길러진 독해 능력이

취미 독서에서 발휘가 되었다.

 

아직까지 흥미가 안 가는 분야는 국사. 유독 정이 안간다. 중국사는 재밌는데 일본사는 재미없고 국사는 더 흥미가 안간다.

나는 언제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순수한 호기심에 읽을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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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개꾸엉
사사로운 글2012. 6. 18. 12:31

나는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술, 과학, 문학 등 여러 분야에서 중요하다고들 하지만 나는 특별히 인간관계와 커뮤니케이션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을 때, 상상력을 통해 내가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그 사람이 처했던 상황들을 나 자신에게 대입해 볼 수 있다.

내 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한 사람의 경험에 대한 공감능력은 곧 사회 전체에 대한 관심과 감수성으로 이어진다.

남의 문제나 사회의 문제를 나 자신의 문제처럼 느끼고 그것을 해결하려는 문제의식을 가지게 된다.

개개인의 의지나 추진력에 따라 그 사람은 실제로 사회의 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공감'은 능력이다.

 

Posted by 물개꾸엉
사사로운 글2012. 6. 13. 17:50


"성숙이라는 억제력에 구애받지 않는 젊은 과학자들이 젊은 시인들과 마찬가지로 최고의 창조력을 발휘한다"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밝힌 과학자 제임스 왓슨이 한 말이란다.

 

가끔 예술혼이 너무 뛰어나서 아무리 야생마같은 행동을 해도 다 용서되는 친구들이 있다. 오히려 정신적으로 다듬어졌지만 생각도 평범한 사람들보다 같이 있는 게 훨씬 즐거운 친구들이다. 빅뱅이론의 쉘든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느낌이랄까.ㅎ

그런데 뛰어난 예술혼이나 창의력은 별로 없어보이는데 행동만 야생마같은 사람들도 있다. 사실 나는 학교를 다니면서 '예술'을 한다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행동에서만 예술혼이 표출되고 아웃풋은 그만큼 내지 못하는 사람을 더 많이 봤다. 순전히 내 느낌이지만...

쉘든은 진심으로 이상하게 행동한다. 자기 상식선에서, 자신의 원칙에서는 그게 맞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한다. 그런데 단순히 특이해 보이는 행동만 하고 일이나 작품에서 그만큼의 아웃풋을 내지 못하면 그건 허세일 뿐이다.

 




Posted by 물개꾸엉
사사로운 글2012. 6. 13. 15:51

잊을만 하면 터지는 학교폭력 기사.

무감각해질만도 한데 매 기사 매 사연에 처음처럼 마음이 아프다.

요즘은 내가 만약 기자를 하지 않는다면 뭘 할까를 고민하고 있다.

사업을 하고 싶은데

아이템은 내가 이루고자 하는 비전과도 맞아야 한다는 생각에 선뜻 아무 아이템이나 내놓을 수가 없다.

비전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거나 있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아주 모호한 것이다.

 

교육이라는 분야는

사업을 시작하기엔 이미 관련 사업이 너무 많고 

내가 대학 4년 내내 교육과 관련된 활동을 해와서 더 새롭게 느껴지지가 않아서 매력이 없고

뭐 그런 이유로 외면해 왔다.

 

그렇지만

내가 4년 내내 해 와서 잘할 수 있기도 하고

언제나 생각해 왔던 것이기도 하고

또 내가 죽기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게 학생들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사업이라 (정확한 모델은 없다 단지 이런 생각만 있음)

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학원이라는 또다른 사교육 시스템을 만들 생각은 없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도록 (학원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교육받을 권리가 있고

나라도 나라의 미래를 위해 세금을 써서 그들을 올바르게 교육시킬 의무가 있으므로

이런 교육은 언제까지나 공교육 현장에서, 모두를 대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공교육 현장에 내가 만든 콘텐츠를 끼워 넣을 수 있는 틈새 시장이 없을까 고민했다

학교 폭력, 경쟁 위주의 교육(이걸 '교육'이라 말해도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을 극복해야 한다

학생들은 일주일에 단 1시간이라도

자기 자신과, 자신이 속한 사회와,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고 생각을 펼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주변 사람과 사회와 자연에 대한 감수성을 길러주는 교육.

그런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할까

정부의 예산으로 운영되는 프로그램이라면

수익도 안정적이고

다른 나라에 전수하는 것도 노려볼 수 있을텐데

 

같이 할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Posted by 물개꾸엉
사사로운 글2011. 6. 24. 14:41


- 미국의 새로운 대북제재 시행령(2011.6) : 북한산 완제품뿐만 아니라 북한산 부품, 기술로 만들어진 제품의 수입도 금지. 개성공단뿐 아니라 황금평 경제특구나 라선 경제특구에서 생산되는 제품, 남북합작영화 등도 수출이 제한됨.
- 뽀로로가 타격받음 : 특히 중국과 유럽을 비롯한 세계 110여국에 수출, 8300억원을 벌어들인 '뽀로로' 역시 북한의 삼천리총회사의 참여로 만들어진 남북합작품이기 때문에 수출 규제대상에 포함되었다.
- 세계일보 사설에서는 북한을 질타함. "북한은 국제사회의 변화 요구를 외면한 채 남남갈등 조장에만 몰두하고 있다. 남남갈등을 증폭시켜 내년 총선과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로 보인다." 며, 이에 대해 북한이 스스로 국제 고립을 심화시키고 있음을 지적. 이와 함께 북한 당국이 5월에 주민 1인당 식량배급량을 190g으로 줄였다는 이야기도 곁들임.

 

Posted by 물개꾸엉
사사로운 글2011. 6. 23. 19:49

현상제시
- 국토해양부는 목금 연찬회에서 4대강 사업 관련 업체로부터 향응을 받음. 공공기관과 민간기업 사이에

만연한 부패의 고리를 보여줌.
- 금융감독원측의 도덕적 해이는 부산 저축은행 사태를 불러옴.

근본원인
1. 정치검찰
- 중수부는 특히 정치검찰의 상징이다. 수사를 하네마네 국민을 협박하고 정치권과 협상을 시도한다. 그들은 수사에 있어 원칙이 없다.
- 이에 대해 국회 사개특위에서 중수부 폐지안을 논의했지만, 이 안을 청와대가 드러내놓고 반박하면서 사법개혁 논의를 좌초시켰다. 스스로 공직부패에 눈을 감겠다는 메시지.

2. 전관예우 관행
- 특히 저축은행 사태 공직자 비리의 핵심은 전관예우다. 공직자가 퇴직한 후 대관 업무를 하는 것. 2008년부터 올 4월까지 감사원 고위 퇴직자 29명 중 17명이 금융회사에 재취업했다. 금융기관을 감독해야 할 금융감독원은 증권, 보험, 저축은행 등 권역별 금융기관에 낙하산으로 내려 앉은 금감원 출신 감사는 36명이다.
- 특히 저축은행 사태 공직자 비리의 핵심은 전관예우다. 공직자가 퇴직한 후 대관 업무를 하는 것. 2008년부터 올 4월까지 감사원 고위 퇴직자 29명 중 17명이 금융회사에 재취업했다. 금융기관을 감독해야 할 금융감독원은 증권, 보험, 저축은행 등 권역별 금융기관에 낙하산으로 내려 앉은 금감원 출신 감사는 36명이다.


 
해결방안
1. 독립된 부처 설치
- 참여정부 때의 '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독립적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고 검찰, 고위공직자, 정치인들의 부당행위와 비리를 발본색원할 독립기구가 필요하다.

2. 최근 대통령이 제시한 전관예우 제한기한을 현실적으로 늘리자
- 최근 이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제시한 것은, 공직자가 퇴직후 관련기관이나 지역에서 연고를 가지며 전관예우를 받는 제한기한을 1년으로 하는 것인데, 기간이 짧아 실효성이 없다. 적어도 3년내지 5년으로 해야 전관으로서의 인과관계가 희석되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본다. 후배들이 인사이동 되지 않는 상황에서 제한기간이 소멸되어 재취업할 경우 전관예우는 지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

결론
- 공직사회는 관행이라는 일그러진 핑계에서 벗어나 스스로 심각성을 깨달아야 한다.

 

보충 : 역대 9번의 특검에 대해 

최초의 특검은 1999 김대중 정부
- 전 검찰총장(당시 법무부장관) 부인에게, 자신의 남편(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의 형사사건 선처를 위해 값비싼 옷을 대납해주었다는 의혹을 둘러싼 '옷로비 특검'
- 한국조폐공사 노동조합의 파업을 독려한 뒤 경찰력을 총동원해 강제진압하고 형사처벌해버렸다는 '조폐공사 파업유도 특검'

이 두 특검이 동시에 실시되었기에 '쌍끌이 특검'이라고 불렸다.
- 이들 두 사건은 검찰총장을 지냈고 현직 법무부장관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이었던 점과, 대검찰청 공안부장을 지냈던 이로부터 자신들이 파업유도를 했다는 말이 나왔을 만큼 검찰조직의 중심부가 수사주체가 아니라 수사대상이 되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에서 검찰조직의 중심부가 수사 주체가 아니라 수사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서, 검찰이 아닌 별도의 특별검사 도입의 명분이 필요했다. 이 점은 검찰도 청와대도 거역할 수 없었다.


* 당시 집권 세력층을 상대로 한 수사한 경우.
- 김대중 정부 시절의 옷로비 특검, 이용호 게이트 특검
- 노무현 정부 시절의 노무현측근비리 특검, 사할린 유전개발 특검

* 구 집권세력과 신흥 집권세력을 대상으로 특검이 임명된 경우
- 노무현 정부 출범직후 시작된 김대중 정부의 대북비밀송금 특검
- 노무현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에게 정권인수작업을 하던 중에 활동한 '이명박-BBK 특검'


이렇게 특검은 보통 청와대나 실세 정치인, 검찰 등 정치권력이나 사정기관 관련 사건에 도입되지만, 예외적으로 2007년에 있었던 '삼성 특검'은 기업을 상대로 한 것이다. 검찰이 그동안 법학교수 등의 근거 있는 고소, 고발 사건을 묵살하고 삼성그룹으로부터 뇌물성 자금을 받은 사람들 중에 검찰간부도 있었다. 이 사건은 정치권력이 아닌 '자본권력'이 특검 수사의 출발점이 된 경우다.

이 9번 특검의 수사결과는 어땠을까. 이 가운데 이용호게이트 특검이나 대북비밀송금 특검은 실체적 진실을 발견했고, 많은 이들을 형사법정에 세우고 형사처벌을 받게 한 경우다. 그러나 최근 스폰서 검사특검처럼 용두사미꼴이었다고 비판받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 대두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는 이들 한시적 특검과 달리, 상설된 특별수사기구이다. 한시적 특검은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기존 검찰이 수사할 것인지, 아니면 특별검사를 임명해 수사할 것인지를 국회가 결정하는 방식이다. 때문에 특정 정당이 특검법안을 발의해 다른 정당과 힘겨루기를 하기도 하고, 다행인 경우 시민단체가 특정사건에 대한 특검법 제정을 청원하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이렇게 특검 임명을 위한 법안이 제정디면 특정 사건을 수사할 특검팀이 구성되고 수사가 시작된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는 이미 구성되어 있는 특별수사기구의 특별검사들과 수사관들이 자동으로 수사하는 방식이다. 굳이 검찰이 할지 특별검사가 할지 정치권에서 힘겨루기 할 필요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이 기구의 수장은 검찰총창처럼 법무부장관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또한 한시적 특검은 기존 검찰조직의 지원이 필수일 만큼 허약한 수사력을 가진다.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이 특별검사로 임명되고, 이 특별검사는 법에서 정한 짧은 수사기간에 수사팀 구성을 끝내고 수사까지 마무리해야 한다. 지금껏 9번의 특검법은 특별검사에게 수사팀 구성에 필요한 기간으로 최장 20일을 줬다. 이 안에 검사역할을 할 특별검사보를 1~3명 선발해야 하고, 수사관을 10~20명 선발해야 한다. 이 기간에 권력 눈치 보지 않고 도덕적으로도 흠결없는 재야변호사 중에서 수사팀을 짜야 하는데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최근 스폰서 검사 특검처럼 검사재직 시절 향응접대 의혹사건에 휘말렸던 변호사가 특별검사보에 임명되었다가 중도에 사직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특검제의 핵심인 특별검사는 어떤 사회적 검증과정을 거치지 않고 급하게 임명된다. 신속한 수사가 핵심인만큼 특별검사 임명과정이 짧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역대 특검을 보면 특별검사법이 공포되고 2~3일 내에 대통령이 특검 추천기관(대한변협 또는 대법원장)에 특별검사 추천을 의뢰한다. 1주일 안에 대법원장이나 변협회장이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특별검사를 임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회에서 검증하고, 언론매체들이 자질을 검증할 시간 역시 부족하다. 대부분 특별검사는 수사경험이 풍부하다는 이유로 검찰 고위간부 출신 변호사가 임명되었다. 왜 저 변호사가 특별검찰이 되어야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Posted by 물개꾸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