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2012 동유럽2012. 6. 30. 02:28

피카소나 반 고흐는 교과서에 나온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 이 두 화가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이 둘과 달리 클림트를 교실에서 가르치지 않은 이유는 그가 관능과 성적 욕망을 그려낸 화가이기 때문이다.

 

메타 디자인 학부생 클림트

우리에게 클림트는 그림으로 친숙하지만, 클림트는 공예와 장식미술 등 실용 미술 전반의 교육을 받았다. 오늘날로 치면 메타 디자인학부생같은 것이다. 그는 빈 공예학교에서 그림과 모자이크 기술을 배웠고, 이후 장식미술학교로 옮겨 장식과 공예, 회화를 익혔다. 학교를 졸업한 뒤 클림트는 동료, 친동생과 함께 쿤스틀러콤파니(화가 공동체)를 꾸려 본격적으로 직업 작가 대열에 뛰어들었다. 오늘날로 치면 디자인 컨설팅 업체인 것인데, 클림트의 쿤스틀러콤파니는 출판과 인테리어, 천장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았다. 닥치는대로 일을 한 클림트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뿐만 아니라 자신의 능력 또한 발전시켜 나갔다.

 

부르크 극장 천장화의 성공

그러던 중 클림트에게 결정적인 기회가 왔다. 환상도로변에 새로 들어선 부르크 극장 계단실의 천장화를 맡은 것이다. 쿤스틀러콤파니의 세 사람은 이곳에다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현대에 이르는 연극 장면들을 그려 넣었다. 이 천장화를 통해 클림트는 건축장식가로서 빈의 예술가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하게 된다. 그리고 곧 황제가 수여하는 예술가 최고의 영예인 황금공로십자훈장을 받게 된다. 이 때 클림트가 스물 여섯 살이었다. (1888)

2년 후 쿤스틀러콤파니는 빈 미술사박물관의 층계 기둥 등에 40점의 그림을 주문받는다. 1891년에 완성된 이 그림으로 클림트는 확고부동한 빈의 스타가 된다. 빈 상류사회는 그를 천재화가로 칭송했다. 하지만 클림트는 만족하지 못했다. 건축장식가로 데뷔한 자신이, 시류에 뒤떨어져가는 제국이 주문한 역사주의적 작품으로 이름을 얻었지만 기득권층이 요구하는 예술로서는 결코 시대를 앞서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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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개꾸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