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2012 동유럽2012. 7. 22. 14:02

 

 

시나고그 Synagogues

 

우리말로는 유대교 회당(temple)이다. 유대인 투어를 하려면 폴란드의 크라카우에 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가야 하지만 나는 부다페스트와 프라하에서 시나고그와 홀로코스트 뮤지엄을 간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한다.

 

 

 

 

유대인과 히틀러  The Jewish and Hitler

 

유대인에 대한 나의 시각은 조금 다층적이다. 유대인이라는 민족 모두를 하나의 집단으로 묶어서, 그들 모두에 대해 일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유대인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건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한 미술이었기 때문에 독일인이나 히틀러의 입장에서 유대인은 어떤 느낌인지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유대인이라는 말로서 그들 모두를 하나로 묶었던 생각의 틀을 조금만 분리시켜 보면 내 복잡한 시각을 나 스스로 이해하는 데에도 훨씬 수월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희생된 유대인과, 자민족중심주의로 똘똘뭉친 유대인, 그래서 독일인에게 적잖이 반감을 사게 했던 유대인(혹자는 독일인 등에 칼을 꽂았다고까지 말할 정도의 배신을 했다고 한다. 나도 어느정도 그렇다고 생각한다.)을 모두 분리해서 보는 것이다.

 

아주 단순하게는, 그러니까 관광지에서 볼 수 있는 정도로만 본다면 히틀러는 악한 지도자고, 유대인은 죄없는 희생자다. 동유럽에 남아 있는 시나고그와 유대인 관련 뮤지엄들은 유대인 학살의 흔적이 남은 가스실이나 샤워실 등을 재현한 시설을 보며(아우슈비츠의 가스실과 소각로도 1946년에 만든 거라고 한다. 대량 학살이 1944년 경 일어났으니까, 그 이후에 조성된 거라고 볼 수 있다.) 인공적으로 조성된 엄숙한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경건해지게 된다.

 

유대인과 관계가 없는 우리같은 사람들은 유대인과 히틀러, 유대인과 독일인의 관계를 보다 객관적으로, 다른 사람의 생각이 아닌, 자기가 찾은 근거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생각을 가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유대인 관광지를 방문하고, 홀로코스트에 대한 영화를 보고, 1944년의 학살을 상기시키는 미술 작품들을 접함으로써 유대인들이 재구성한 '그들의 기억'을 알게모르게 우리 모두의 기억처럼 습득하게 되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뮤지엄이든 영화로든 일본의 제국주의적 만행의 기억을 다른 민족도 공감할 수 있도록 재구성하지 못한 것은 우리 민족의 과오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 이후로 우리는 일본제국의 피해를 봤고, 지금도 일본은 독도를 앗아가려 한다는, 다른 사람이 전혀 관심이 없는 무미건조한 외침을 뒤늦게 하는 것은 어찌보면 가슴아픈 '뒷북'인 거다.

(사실 일본과의 독도 분쟁은 제국주의 일본과는 조금 다른 맥락이라고 생각하지만)

 

유대인은 근거지가 없어 떠돌았다. 그래서 믿을 건 돈과 동족 뿐이었다. 그들은 돈과 동족에 대한 애착 때문에 금융업과 민족애를 바탕으로 전세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자신들의 '기억'을 전 세계 사람들의 아픔과 인간애로 승화시킬 수 있는 영화도 다수 만들었다. 학살 이후로도 독일 사람들은 계속 유대인 시나고그 앞에서 사과를 한다. 이렇게 독일인들로 하여금 계속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할 만큼 그들은 자신들의 희생을 주장했고, 또 자기 선조의 희생에 사과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유대인이 지금까지 금융업 및 미국 영화산업 등지에서 영향력을 떨치고 있지 않았더라면 과연 독일인들은 유대인에게 사과를 했을까? 히틀러는 가끔 미쳤다 싶을 정도로 악한 지도자로 그려지지만, 그가 그만큼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건 당시 독일인의 유대인에 대한 반감과 위기의식이 그만큼 심각했다는 방증(傍證)이기도 하다.

 

독일 땅에서 유대민족은 나라 인구의 3%를 차지하던 외부인이었다. 그런데 이 외부인이 경제 활동에서는 30%가 넘는 비중을 차지했고, 그마저도 거의 고위직에 몰려있었다. 독일인 입장에선 유대인이 곱게 보일 리가 없다. 게다가 유대민족이 주로 업으로 삼는 일이라곤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생각되었던 금융업이나 중개업이었다. 종교마저도 독일인이 믿는 크리스찬이 아니었다. 당시 유럽에서 유대인에 대한 반감이 깊었다는 것을 상기하면, 독일인이 유대인의 이주를 받아준 것은 은혜와 같은 처사였다. 2차대전 직전, 유대인 학살이 있기 전에 독일에 그만큼 많은 유대인이 살았다는 것은 거꾸로 생각하면 떠돌던 유대인을 그만큼 받아준 나라가 독일이라는 것이다. 

 

히틀러도 처음에는 유대인을 보호하기 위해 집단 거주구역(geto)을 만들었다. 유대인에 대한 독일인의 반감이 심해져 민간 테러가 자행되었기 때문이다. 히틀러는 geto에서 유대인을 거주시키다가, 나중에는 유대인을 아프리카로 이주시키려 했다. 한편으론 유대인이 주장하는 자신들의 '약속의 땅' 팔레스타인으로 독립할 수 있도록 도왔다. 우리에겐 geto가 인종을 분리시키고 가두었던 곳으로, 히틀러가 유대인에게 한 것이라곤 학살 뿐이라고로만 기억되지만, geto는 유대인을 보호하기 위한 곳이기도 했고, 학살은 맨 마지막 카드였던 것이다.

 

우리나라로 바꿔 생각하면 유대인은 이런 느낌일 것이다. 아무 나라에서도 안 받아주던 난민을 대거 받아줬는데, 그들이 생산적인 일을 하지도 않으면서 부와 권력의 대부분을 가져가는 것이다. 그들이 고위직을 차지하는 바람에 우리 민족은 허드렛일을 하고, 실업을 하고, 돈을 많이 못벌고, 그들 밑에서 일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민족에 대해 반감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부와 권력을 상당부분 가져간 유대인들에게 독일인들은 두려움과 저항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당시 독일의 지도자들이 독일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하고 그들에게 잘 보이며 편히 살자고 말했다. 독일 인들은 속이 뒤집어졌다. 그 속에서 게르만 민족의 긍지를 잃지 말자고, 우리가 잃은 것을 되찾아야 한다며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신감을 불어 넣은 사람이 히틀러였다.

 

 

시대를 불문하고 전쟁과 살상은 무조건 나쁜 거였다. 두 아이가 싸울 때 둘 사이에서 아무리 인신공격적인 말이 오가도 결국은 먼저 주먹을 휘두르는 쪽이 계속 불리해진다. 남는 건 언쟁이 아니라 싸우는 장면을 담은 사진이고, 눈으로 볼 수 있는 상흔이기 때문이다. 결국 진짜 잘못한 쪽이 어디인지는 상관 없이 폭력을 휘두르고 그걸 흔적으로 남기는 쪽이 무조건 불리해진다.

 

수용소에서의 유대인의 죽음은 '대량 학살'이라는 특정한 사건으로 남았고, '홀로코스트'는 히틀러의 무자비함과 유대인의 희생을 대변하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이 말은 각종 매체와 미술, 영화와 다큐멘터리 등으로 확대 재생산되며 점점 원래의 복잡다단한 사건의 본질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결국 더 끝까지, 집요하게 주장하는 쪽이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대인 시나고그를 돌며 그들이 조성해 놓은 경건한 분위기에 도취되지 않으려 한 것은

직접적이기보단 간접적으로, 이성보다는 마음으로, 글보단 시각과 오감으로 느껴지는 유대인 희생의 '기억'.

 

이 기억을 제대로 구성하지 못한 민족의 일원으로서

이렇게, '조성된' 기억의 이면을 볼 수 있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부다페스트에 있는, 시나고그 입구의 기부함

참고로 입장료도 받음.

 

슬리브리스를 입고 갔더니 입구를 지키던 분이 도포를 덮으라며 주셨다.

이태원에서 이슬람 사원 갔을 때에도 반바지 입으니까 덧입는 탈의 치마같은거 주셨는데.

 

 

 

 육각형과 Jewish Stars가 유달리 많은 실내

 

 

 

 

별모양이 많길래 보이는대로 찍어 보았다.

 

유대인 지구(geto)의 예전 모습을 재현해볼 수 있는 인터랙티브 아트(?)  

전시의 마지막은 지하층인데, 지하층에 이런 음습한 계단이 있길래 내려가 봤더니

기도당처럼 생긴 벽이 있었다

 

출구의 기념품 가게. 오늘은 쉬는 모양

 시나고그 정원의 유대인 묘지

 

 

 

 

부다페스트엔 시나고그 외에도 테러리즘 박물관(Terrorism Museum)과 홀로코스트 기념관(Holocaust Memorial Museum)이 있다. 페스트 지구의 동남쪽에 있는데, 테러 박물관은 국내 여행책자에도 소개돼 있고 현지에서 얻을 수 있는 지도에도 표시돼 있지만 홀로코스트 기념관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둘 중의 한 곳을 가야한다면, 나는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추천한다. 테러 박물관은 에어컨 잘 틀어 놓고 이런 저런 사건의 사진과 영상을 모아 놓은 곳이다. 실내에선 사진도 찍을 수 없고, 사실 개인적으로는 별로 볼 것도 없었다. 그런 영상과 사진은 유튜브나 구글에도 널렸다!

홀로코스트 기념관은 갈 만 하다.  특히 지하에 유대인 수용소를 그대로 재현해 놨는데, 재현이라곤 믿기 힘들 정도로 실감나게 조성해 놓았다. 꼭 거기 가서 경건한 마음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거기 갇히면 어떤 느낌일까를 아주 생생하게 상상해볼 수 있는 기회다.

 

테러리즘 박물관 근처인데, 그 근처에 현대미술관(Contemporary Art Museum)도 있으니 걸어서 두 곳을 모두 가 볼만 하다. 내가 갔을 때 현대미술관은 휴관이었지만, 8월 이후에 가면 전시를 재개한다고 한다. 작은 규모의 미술관인데 재밌고 실험적인 전시를 많이 하는 것 같으니 추천! 그러나 또, 그 근처에 있는 국립 박물관(National Museum)은 정말 돈 아깝고 볼 것 없으니 제발 가지 말라고 하고 싶다. 한화로 약 1만5천원이었는데, 부다페스트의 물가를 생각하면 엄청나게 비싼 돈이며, 콜렉션도 빈약하고, 학생 할인은 EU 국가에만 해당되고, 에어컨도 안 틀어 놓는다. 

 

 

 

 

Terrorism Museum, Budapest

 

리프트를 타니 이런 장면이! 무서웠다

 

 

 리프트 밖에서 본, 리프트를 타면서 볼 수 있는 얼굴들의 전면

 

 

 

 

Holocaust Memorial Museum, Budapest

 

 

 

 

 

 

 

 

 

 

+ 여긴 국립 박물관. 안에서 사진을 못찍게 하길래 이런 것만 찍었다. ㅠ

 

 

 

 

 

+ 유대인은 다음에 더 자세히 포스팅할게요!

Posted by 물개꾸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