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2012 동유럽2012. 7. 25. 01:35

 

 

Budapest, Hungary

 

 

파괴와 재건의 도시 부다페스트.

도시를 지으면 전쟁으로 파괴되었고 그 위에 도시를 다시 건설하면 또 전쟁이 터졌다. 켈트인이 최초로 발견해 부다페스트의 가장 높은 언덕에 요새를 짓고, 그런 켈트인들을 로마의 군대가 밀어내고, 그 로마인들이 부다페스트에서 온천을 캐내고, 이후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터키인들에 의해 지배를 받고, 오랜 역사를 가진 도시지만 지금 우리가 보는 부다페스트는 파괴와 재건의 힘겨운 과정을 거듭해 온 도시다.

 

질곡의 역사 속에서 끈질기게 살아왔고 끝내 다시 일어섰던 한국인의 모습이 부다페스트와 겹쳐졌다. 실패는 있어도 좌절은 없다는 말은 서울과 부다페스트, 두 도시 모두에 꼭 들어맞는다. 그래서인지 이번 여행에서는 다른 어떤 도시보다 부다페스트에 대한 기대가 컸었다. 

 

 

처음 부다페스트에 갔을 때엔 이상하게 돼 있는 도로명 체계와 영어를 전혀 못하는 현지인들 때문에 애를 먹었다. 야간열차를 탄 후 아침 8시 반에 도착했는데, 그늘 하나 없는 땡볕에서, 영어도 안통하는 사람들에게 물어가며 짐을 들고 2시간을 뱅뱅 돌아 결국은 길바닥에 주저앉았었다. 돈을 아끼기 위해 국제전화만은 하고 싶지 않았기에, 최대한 전화는 하지 않고 숙소에 가고 싶었다. 그러나 이러다가는 내 건강상태가 나빠지겠다 싶어 전화를 걸고, 기차역 바로 옆에 있던 숙소에 도착했다. 기차역 바로 옆의 숙소를 못찾다니, 정말 눈뜬 장님이 따로 없었다. 아니 멀쩡한 사람을 눈뜬 장님으로 만드는 이상한 도로 체계를 가만 놔둔 부다페스트가 원망스러웠다.

 

 

지친 나는 호스텔에 짐을 풀어 놓고, 야간열차를 타는 동안 씻지 못했기에 분노의 샤워를 하고 나갔다. 호스텔 도착 10시 반, 샤워 및 일정짜기 1시간 반. 호스텔을 나선 시각은 정오였다. 아... 조금만 더 늦게 나갈걸! 정오에 부다페스트에서 나가면 정말 후회하게 된다. 너무 덥기 때문이다. 얼마나 더웠냐면, 작년에 Las vegas를 갔을 때 호텔에서 정말 한발짝도 나가기 힘들었는데. (느낀 바로는 습기 하나도 없는 사우나방 같았음. 사막 위에 지은 도시에 아스팔트 복사열이 솟구치니,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덥다) 그 때에 버금가게 더웠다. Vegas는 호텔 건물이라도 높고 많아서 그늘이 좀 있었는데 부다페스트는 정말...

 

 

 

 

일단 눈 앞에 보이는 버거킹에서 콜라를 샀다. 작은 것 달라고 했더니 자판기 커피잔 만한 걸 준다. 한 번에 바로 다 마셨다. 너무 더웠고 계속 수분이 필요했다. 콜라를 원샷하고 나니 앞에 있는 사람도 좀 보이고, 제대로 보면서 걸을 수 있게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처음 본 부다페스트는 이런 모습이었다.

 

 


도로가에 마구 주차해 놓은 차들

 

 


유난히 굵어서 거슬렸던 전신주

 


호그와트학교 후문?!

 


전단지가 꽂힌 낡은 문. 전단지를 안찾아간건지, 전단지 배포대인건지.

 

 

인터폰도 떼 갈까봐 저렇게 철창을 설치해 놓은 건지 ㅋㅋ


 

길에 덩그러니 놓인 음식물 쓰레기통

 

 

재밌게 생긴 쓰레기통


 

오래된 인도와 네모난 맨홀

 

 

노상방뇨 하기 좋은 곳에 자라난 식물.


 

입구같은데 돌로 막혀 있고. 말 그대로 폐허같은 인상이었다

 

 

 숙소(기차역 근처)에서 영웅광장까지 걸어갔는데

도저히 너무 더워서 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하철을 타려는데 지하철역이 분명 있어야 하는데 그런 건 보이지 않고...

 

 

 

안드라시 거리(Andrassy utca)라고 지도에 적혀 있는 유명한 거리인데 도대체 어느 포인트에서 유명한 거리인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아야 하는지.


나치 시절땐' 히틀러 거리', 공산화 이후 ‘스탈린 거리’로 개명됐던 이 거리는 헝가리 수탈사의 축약판.

 

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아 두고 갔지만 막상 걸으면서는

'끼익' 소리를 내며 골목에서부터 과속하는 차들

신호 무시하고 기회만 되면 무단횡단하는 보행자들

내가 느릿느릿 걷고 있으면 초록불이어도 내 앞을 막 질러가는 차들

과 더위 때문에 아무 생각도 안들었다.

 

그런데,

저 노란 것이 설마 지하철역?

 

 

와. 정말 작다. 신경써서 안봤으면 그냥 지나칠 뻔 했다.

1일권을 끊어야 하니까 일단 들어갔다.

 

 

 

계단 하나를 내려가니 바로 티켓판매기와 플랫폼이 나온다.

실제로 이 걸 느껴 보면 엄청 황당하다.

깊은 지하가 있을 줄 알고 마음의 준비를 하며 계단을 내려가는데

계단 여댓개만 내려가면 바로 플랫폼이 있는 것이다.

 

어쨌든 티켓을 사려고 지폐를 넣었다.

근데 지폐를 안먹게 생겼다 했더니 예상대로 내가 넣은 지폐를 뱉어냈다.

있는 지폐 종류별로 다 넣어 봤는데 다 다시 나왔다.

고장난 기계였다.


왜 설치를 해 놓은 거지...?

결국 걸어서 영웅광장까지 갔다.

 

 

주변에 부다페스트에서 영웅광장 가 본 사람들은 다들 하는 말이

"너무 더워서 제대로 못봤다"

나도 그랬다.

정말 너무 더워서 제대로 보긴커녕 사진만 대충 찍고 지하철역으로 피신했다.

 

 

결국 티켓을 안먹는 지하철 탓이라며 나는 무임승차를 했다

프라하에서 이미 무임승차로 걸린 아시아 청년을 본 적이 있기에

좀 가슴졸이긴 했지만...

더위는 모든 걱정을 극복하게 만들었다

까짓거!! 걸리면 뭐 어때. 지금 더워서 죽겠는데. 몰라.

 

 

세계적 관광지라며!

부다페스트에 실망한 나는

부다페스트에서 제일 번화하다는 바치 거리로 갔다.

 

 

 

바치 거리Vaci utca를 알리는 이정표

 

 


전부 관광객이다

인구밀도 적은 명동같았다

 

 

 

 

그렇게 지저분하던 부다 페스트에 이렇게 깨끗한 거리가 있다니.

게다가 쇼핑할 것도 많은데 사람은 적어.

갑자기 부다페스트가 맘에 들기 시작했다.

 


다이어트 약도 팔고

 

기타 용품과 악보도 팔고. ㅎㅎ

 

여긴 주거 지역인데 깔끔하고 좋았다. LG!! 반가워

 


깨끗한 바치 거리에서, 가장 깨끗해 보이는 음식점에 들어갔다.

일단 콜라는 무조건 시키고

 

음식 기다리는 동안 손님들 구경하다가

 

쇼케이스의 샌드위치도 구경하고

(가까이 가서 찍고 싶었지만 눈치가 보였다)ㅠㅠ

 

독특한 인테리어 소품.

저기다가 샐러드와 샌드위치를 포장해 준다.ㅎㅎ

위를 올려다보니 조명도 예뻐! ㅎㅎ

 

그리고 시킨 음식이 나왔다.

물가가 엄청나게 싼 부다페스트에서, 닭가슴살 스테이크가 무려 1만원이었다.

그래도 맛있었으니 만족 ㅎㅎ

 

콜라론 부족해서 딸기 블렌디드를 더 시켰다.

정말 시럽 하나도 안 넣고 줬다. ㅋㅋ

어쨌든 맛있는 것도 먹고 수분도 보충하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역시 사람은 몸의 상태에 따라 여러가지가 달라 보이나 보다.

이곳에서 책을 보면서 해가 져서 좀 서늘해질 때를 기다려 2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바치거리 끄트머리에서 트램을 타고 아무곳에나 가기 시작했다.

사진에도 보이지만 벌써 햇볕이 좀 약해졌다.


유럽 여행은 트램타고 아무데나 가는 게 제일 재밌는 것 같다.

버스처럼 노선이 구불구불한 게 아니라, 트램은 무조건 오가는 노선이 항상 반대편에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서울 버스는 거의 그런 편이지만)

어딜 가도 길을 잃어버릴 걱정 없이 다닐 수 있다.

 

 

 

강변에 운치 있게 앉아 있는 오빠ㅋ

 

 

 

행인들도 관찰하고

 

 

 

 

도나우강 보고 감탄도 하고

 

 

 

유람선도 보고. 와 나도 남자친구랑 타 보고 싶다~

 

 

 

해가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터널을 통과하기도 하고

 

 

 

트램을 몇 번이고 갈아 타면서 강도 몇 번이고 건넜다.

서울로 치면 한강을 건너 강남과 강북을 계속 왔다갔다한 것 ㅎㅎ

 

트램 안에서 도나우 강 보면서 사진기 들고 찍고 있으면

현지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막 자리를 비켜 주신다

앉아서 마음껏 감상하라며..

이렇게 친절할 수가! ㅠ

부다페스트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ㅋㅋ 

 

 

 

쇼핑거리의 젊은이들(내가 이 말을 쓰니까 이상하네ㅋ)

 

 

 그리고 이 풍경을 보는 순간! 트램에서 바로 내렸다

흔들리지 말고 잘 찍자.. 하는 마음에서 내린건데

흔들려버렸다

 

 

도나우강을 따라 주욱 걸었다. 1시간 쯤 걸은 것 같다. 해가 완전히 졌다.

이 예쁜 다리가 세체니다리다.

 

 

 

세체니 다리(Szechenyi Bridge)

 

부다페스트는 다뉴브 강 서쪽의 부다Buda 지구와 강 동쪽의 페스트Pest 지구로 나뉘어져 있지만 부다페스트라는 하나의 도시다. 그러나 200여년 전에는 높은 언덕이 많은 부다 지구에는 왕족과 귀족이 살았고 평지의 페스트는 주로 서민이 거주했다. 이 두 지구는 한 때 넘을 수 없는 다뉴브강을 사이에 둔 채 별개의 도시로 제각각 발전했다. 이 두 도시는 높이만큼이나 이질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니 오래 전부터 다리를 놓아 연결하려는 생각은 있었다. 그런데 정작 다리를 지을 수 있는 돈을 가진 부다 측에선 별로 내키지 않아 했던 것 같다. 부다의 수준이 페스트의 수준으로 하향 평준화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여기에 다리를 놓은 사람이 세체니(Istvan Szechenyi)였다. 세체니 집안은 헝가리 귀족 계급 중에서 둘째라면 서로워할 정도의 명문가 중 명문가였다. 그의 아버지 역시 사회적 역할에 관심이 많았던 인물로, 자신의 콜렉션과 책을 국가에 기부해 헝가리 국립박물관과 세체니국립도서관의 실질적 설립자가 되었다. 세체니가 부다와 페스트 사이에 다리를 건설하게 된 계기는 바로 이 아버지 때문이다. 페스트에 있다가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급히 부다로 돌아온 세체니는 배편이 없어 다뉴브를 건너지 못한 것이다. 당시 날씨가 좋지 않아 다뉴브의 배편은 8일간 결항되었다고 한다. 이에 세체니는 자신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 없길 바라며 자신의 1년 수입을 과감하게 내 놓고 다리 건설을 추진했다. 그래서 다리 이름이 세체니 다리다.

 

 

 

 

트램을 기다리는 사람들

 

 

 

낮에 이 쓰레기통을 봤을 땐 참 이유없이 싫었는데

밤되니까 괜히 정드는 기분이었다 ㅋ

 

 

 

무슨 표시일까. 아래에는 주차 가능 시간을 말하는 것 같은데..

 

 

다시 돌아온 바치 거리. 담엔 누구든 함께 와야겠다. 너무 좋았다.

 

 

 

어느덧 시각이 늦어져 막차를 놓치기 직전 시간까지 돌아다니고 있었다.

부다페스트에서의 첫날밤은 이정도로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하철로 다시 돌아왔다.

참고로 1호선만 땅 바로 밑에 지었고,

2,3호선은 꽤 내려가야 한다.

 

 

 

 이렇게, 직전 열차가 떠난 지 얼마나 됐다는 표시가 있다.

보통은 배차간격이 2-3분, 늦은 시각에는 5분이 넘어간다.

 

 

 

 여행지여서 그런지, 서울처럼 평일 저녁에도 술이나 일에 찌들어 보이는 사람들보단

즐겁게 돌아다니고 놀던 즐거운 얼굴들이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삼성 갤럭시 S 3가 2만 포린트(약 10만원)라는 광고.

뭐야 왜이렇게 싸

 

ㅋㅋ

 

 

 

사실 부다페스트에 대해 공부할 게 많아서 포스팅을 계속 미루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여행의 기억도 자꾸 흐려져서 (?)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그냥 일기 형식의 글을 썼다.

 

 

덥지 않을 때 간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부다페스트에선

유대인 시나고그가 좋았고

물가도 좋았고

도나우 강을 보며 하는 트램 여행도 좋았다

 

 

 

 

 

Posted by 물개꾸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