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2013. 10. 22. 05:56

여행이 끝났다.

아직 LA에서의 하루와 타이베이에서의 10시간이 남았지만..

남미는 끝났다.


한마디로 나의 못난 면을 너무나 많이 드러낼 수 밖에 없었던 여행이었다.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일은 너무나 복잡하게 꼬였으며, 그 때문에 공연히 어머니만 고생했다.


그렇게 고생하는 어머니에게 자주 짜증을 냈고, 그 땐 내가 수많은 '문제 해결'을 위해 이런 기분 상태인 게 당연하고, 그걸 어머니가 이해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모든 게 정리되고, 어머니는 인천으로 가시고, 나는 남아서 지난 한 달을 돌아보니.


내가 잘 못한 게 너무 크다.

어머니는 그냥 이번 여행에서 너무 많은 희생을 하셨다.


운이 나빠서 도둑맞았다 쳐도, 그 사람들이 백번 나빴다 쳐도, 비용이 많이 들어갔다 쳐도

내가 조금만 조심했으면 다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그 사람들은 원래 그런 사람들이고, 원래 일은 그렇게 풀리는 것이며,

결국 전부 철저히 준비하지 못한 내 잘못이다.


엄마한테 좀 더 좋은 추억을 주고싶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 너무 죄송하고

이걸 어떻게 메울 수 있을지, 메워야만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너무 답답하고 마음이 무겁다.



마음이 어려운 만큼 배움도 큰 여행이었다.

나는 내가 그동안 외면해왔던 나의 가장 큰 문제가 뭔지 매일매일 나 스스로 발견하고, 그렇지 않은 어머니와 나를 비교해야 했으며, 그런 과정은 감당할 수 없이 나를 힘들게 했다.



비행기에서 오랜만에 손으로 공책에 써 보았다.

내가 한국에 돌아가면 뭐부터 해야하는지.

엄마가 공책에 한줄 씩 기록할 땐 요즘사람답지 못하다며 

나는 어플에 기록하고 기기끼리 동기화하고 그렇게 하면 내 스케쥴, 내가 할 일이 세련되게 관리되는 줄 알았다.

기계가 없어져 버리면 완전 바보가 된다.

그런 비싼 기계들은 없어져 버리기 딱 좋다.

글로벌 스탠다드는 다른 게 아니라 치안이 나쁜 밤길, 위험한 대도시이며, 그론 글로벌 스탠다드에서 중요한 것은 안전이었다. 


여권지갑 쓰지 말라는 거, 거기다 현금 카드 끼워넣지 말라는 거, 기록은 종이에 펜으로 하는 게 확실하다는 거, 얼마나 비용이 들었는지 아무리 환율이 복잡해도 언제나 기록하고 기억하라는 거, 길가면서 음악 듣지 말라는거, 밤늦게 다니지 말라는 거..


모두 엄마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셨던 말이다.


후회스럽다.

지난 일에 대해 무조건 외면해왔으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후회는 하지 않았었는데.

처음으로 내 선택, 내 행동들에 대해 뼛속깊이 후회스럽다.

이제는 지난 일에 대해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고, 잘못했던 것들을 요목조목 찝어가며 반성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

그러니 한국에 돌아가면 며칠간은, 지난날을 돌아보고 기록하고 개선점을 확실히 하려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한국 돌아가서 내가 한달 간 책임을 지지 못했던 두 가지에 대한, 여행 전보다 더 큰 책임을 질 것이고

내가 여행 중 만든 모든 문제에 대해 어머니께 어떻게든 보상해 드릴 것이고

가방에 있는 물 다 먹기 전까지 콜라는 절대로 안 살 것이며

음식을 버리지도 않을 것이다


내 한 몸 잘 다스릴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것부터 시작할 것이고

내가 매니징할 수 있는 일만 맡아서 할 것이고

하나를 끝낸 뒤에 다른 하나를 할 것이다



더이상 펀더멘탈이 없는 채로 계속 앞으로만 갈 수 없다

남은 2013년은, 그동안 내가 가져온 수많은 빈틈들을 꼼꼼하게 채워 나가는 시간으로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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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개꾸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