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2013. 10. 3. 23:39



LA에서의 6일은 환상적이었다. 예쁜 밤거리, 화려한 조명, 깔끔하고 잘 정돈된 명품 거리, 에버랜드보다 몇 배는 더 놀이동산같은 팬시한 백화점. 잘 모르지만 빠르고 좋은 차(!)를 타고, DJ를 하는 오빠 덕분에 딥 하우스니, 하드스타일이니 하는 새로운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경찰에게 걸리면 티켓 끊을 속도를 내며 LA의 밤거리를 누볐다. 오빠는 멋있었고, 나는 혀를 내밀고 창밖을 보며 여기가 현실 세계인지 아닌지 헷갈려했다.


일렉 음악.. 작년에 DJ를 하던 남자분을 잠깐 만날 때부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장르다. 우리나라에선 일렉을 듣는 사람이 많이는 없다. 오빠가 말하길 미국은 우리가 가요를 듣듯이 일렉을 듣는단다. "너 일렉 좋아해?"라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대답하면, 남들이 좋아하는 평균보다 훨씬 많이 좋아한다는 뜻이지, 일렉을 하나의 장르로서 좋아한다는 뜻이 아닐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일렉을 좋아한다. Vegas에 유명한 디제이가 오면, LA에서 Vegas로 가는 것이 선택이 아닌 의무일 정도라고 하니. 


The standard rooftop bar에서 틀어주는 음악도 일렉이었다. 일렉트로닉 뮤직-DT의 화려한 마천루, 낮은 인구 밀도, 사람 없는 밤거리, 건조하고 시원한 밤공기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음악이었다.  


rooftop bar에서 일렉 음악에 맞춰 술을 마시고 몸을 흔드는 게 과연 삶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이 많은 부분을 차지할 수 있나? 잘 모르겠다. 비즈니스는 계약을 따내고 매출을 올리는 것이 뉴스에 나오고, 사람들은 대부분 뉴스로만 내가 직접 알지못하는 세상을 접하기 때문에 그런 이미지만 막연히 가질 수는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 회사에 다니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 계약과 매출 상승은 다르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 과정들을 위해 수많은 깨끗지 못한 뒷갈망과 불합리, 또는 누군가가 메워야 했던 크고 작은 실수부터 시행 착오까지- 그것들을 샌드위치의 단면을 잘라 보듯 어느 하나도 비중을 적지 않게 정확히 봐야 한다. 빵의 겉부분만 보고 어떻게 샌드위치를 알 수 있나. 


hotel의 rooftop bar에서 술을 마시며 춤을 추고 돈을 쓰는 사람들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들이 술을 마신 후 토를 한다면 그 토를 치우는 사람은 따로 있고, 이 사람들이 호텔에서 방탕하게 논 뒤 나간 자리를 치우는 사람은 또 따로 있고, 이 사람들은 그것들이 완벽하게 치워진 또 다른 방으로 가서 더럽히고 오겠지. 그것이 오물이든, 머리카락이든, 향기든, 떨어뜨린 신용카드든 뭐가 됐든 머문 흔적을 남기고 다니면서 누군가가 뒷정리를 하고 다니겠지. 


나에게 미국은 그런 나라 같다. 물론 나는 미국을 좋아하지만, 파티를 하는 것, 기계음으로만 이루어진 일렉 음악을 들으며 신나게 살고, 언제나 예쁘고 깨끗한 모습만 보이고 사는 사이보그. 어디서 전쟁이 났다는 소식, 어디에서 누가 어떻게 살고 있다는 소식보다는 애플에서 나온 신제품에 열광하고, 구글에서 나온 새로운 서비스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 그게 미국에서 파티를 하며 사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 같았다. 물론 내가 만는 그 사람도 그런 사람 중 한 사람 같았다. 



여행은 그야말로 리얼리티다. 유명한 관광지를 보는 것 말고, 여행의 모든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어려운 상황들이야말로 샌드위치를 잘라서 나 자신의 삶을 정확하게 되돌아보게 하는 것들이다. 나에게 아무런 전자 기기도 없다면? 노트북이나 카메라는 물론이고 핸드폰도 없다면? 그러나 핸드폰을 언제든 다시 살 수 있는 한국이 아니라면? 오로지 내가 기댈 곳은 지나가는 차의 운전수, 횡단보도에서 내 옆에 서 있던 모르는 누구낙, 그리고 건강한 내 몸뚱이 하나라면? 혹시나 운이 나빠서 출국조차 하지 못해 이곳에 불법체류자로 영원히 현금을 받는 허드렛일을 하며 살 수 밖에 없다면?



우리가 살면서 찾아야 하는 게 단 하나 있다면, 그것은 나는 무엇을 위해(=왜) 사는가에 대한 답이다. 그리고 여행은 이 질문에 보다 현실적으로 대답할 수 있게 하는 '시작점'이다. 다른 나라에 가서 돈을 쓰며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는 것은, 우리가 인생에서 할 수 있는 도전 중 비교적 쉬운 단계에 속한다. 여행은 환경과 외부 자극의 변화이지만, 역설적으로 우리 자신의 몰랐던 부분을 알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런 책도 있지 않나, <남미, 나를 만나기 위해 너에게로 갔다> 나는 모든 여행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진짜 나를 알기 위해서는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적 조건을 바꿔 봐야 한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나 자신은, 내가 속한 환경 속에 일정한 포지션으로 박혀 있는 나 자신이다. 그 환경을 바꿔 보면, 환경과 상관없이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고 결정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아주 기초적인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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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개꾸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