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2013. 12. 3. 09:45



처음 장시간 비행기를 탔을 때, 처음 내 눈 앞에서 서빙되던 기내식을 잊을 수 없다. 그 기내식을 찍기 위해 커다란 디에스엘알 카메라를 굳이 비행기에 가지고 탔었다. 네덜란드계의 승무원 언니는 나에게 치킨과  돼지고기 중 어떤 걸 먹을 것인지를 물어보았다. 나야 뭐가 됐든 좋으니 빨리 달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난 마치 기내식이 처음이 아닌 듯 "취킨..."을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너무 조용히 말한 나머지 승무원이 알아듣지 못해 두 세번 크게 말해야 했고, 결국 나는 사람들이 나의 부끄러운 영어 발음을 더 듣기 전에 '치킨이요 치킨'이라고 말해버렸다. 


뽀얗고 깔끔한 플라스틱 그릇에 샐러드, 볶은 해산물, 후식 케이크, 그리고 제일 큰 그릇에 덮인 호일을 벗기니 양념이 듬뿍 발린 치킨과 밥이 있었다. 샐러드와 해산물과 케이크는 차고, 치킨 라이스는 따뜻했다. 서빙된 버터롤은 전자렌지에 데운 것 같지는 않게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했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차와 커피가 서빙되고, 식후엔 와인이 서빙되었다. 


보통 기내식을 받을 때 승무원이 승객에게 '치킨이냐 돼지고기냐'를 묻는 메인 요리인 핫 밀(hot meal)은 보통 따뜻한 상태로 서빙된다. 처음 비행기에 타서 한 두시간 후에 서빙되는 기내식의 핫 밀이야 보온 기구에 보관하면 따뜻하겠거니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저녁을 먹고 8시간을 자고 일어난 뒤 다시 제공되는 아침에도 핫 밀은 여전히 따뜻했다. 그렇다면 그 보온 기구는 단순히 보온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정 온도 이상의 가열 기능도 있을 것일까? 그런데 그렇게 장시간 보온을 해 두면 음식의 수분이 다 빠져 나가거나, 혹은 음식이 머금은 수분이 그릇 뚜껑 안쪽으로 맺히고 음식은 장시간 보관한 밥마냥 맛이 없어질텐데, 우리나라의 밥솥처럼 엄청난 과학이라도 숨어 있는 것인가? 여러가지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궁금증은 스위스 에어라인에서 기내식 관리를 담당했던 Jan에게 물어 풀 수 있었다. 보통 기내식은, 항공기가 출발하는 공항에 가까이 위치한 공장에서 만들어진다. 그 공항에서 출발하는 거의 모든 노선의 항공기의 기내식이 출발지의 공장에서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인천공항에 위치한 대한항공이 관리하는 기내식 공장이 있다면, 그 곳에서는 대한항공의 기내식뿐만 아니라 인천공항에서 출발하는 항공기 중 대한항공과 계약을 맺은 항공사들의 기내식까지 모두 준비하는 것이다. 인천에는 대한항공 인천기내식센터와 아시아나 항공이 계약을 맺은 LSG스카이셰프코리아가 있다. 대한항공 인천기내식센터에서는 대한항공은 물론, 대한항공과 계약한 37개 외국 항공사의 기내식까지 만들어진다. LSG는 루프트한자항공 계열사인 LSG 본사는 세계 최대 기내식 케이터링 업체공장은 우리가 상상하는 식당과는 달리, 철저하게 위생을 최우선으로 관리되고 있다. 일반조리실 15도, 냉장보관실 5도의 조리실에는 수 십 개의 CCTV가 보안을 위해 조리실 내를 감시하고 있다. 이곳에서 머리에 두 겹의 두건을 쓰고 온 몸을 둘러싸는 가운을 입은 몇 백명의 조리사들이 정해진 시간과 생산 라인에 맞추어 일사불란으로 기내식을 생산한다. 


승무원들은 비행기가 출발하자마자 승객들의 첫끼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승무원들이 기내에서 요리를 하는 것은 아니다. 기내식은 대부분 공장에서 완성된 상태로 비행기에 실리지만, 핫 밀은 반 정도만 익힌 상태에서 급속 냉각 과정을 거쳐 기내로 들어가게 된다. 급속 냉각을 하는 이유는 맛과 위생 때문이다. 장시간 천천히 냉각시켰을 때 미생물이 번식하기도 쉽고 음식의 맛이 변하기도 쉽다. 이렇게 항공기에 실린 기내식은 순항고도에 접어들고 난 뒤에 오븐으로 재가열해서 탑승객에게 제공된다. 그래서 승객들은 탑승 후 1~2시간 후에 이런 과정을 거친 기내식을 받게 되는 것이다. 


지금에야 장시간 비행에서 식사는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니 기내식이 당연하지만, 이런 당연한 것도 결국은 누군가가 제시한 아이디어에 의해 시작된 것이다. 최초의 기내식은 1919년이었다. 당시 런던과 파리 사이의 항공노선에서 샌드위치와 과일 , 초콜릿 등을 종이상자에 담아 승객에게 제공한 것이 오늘날 기내식의 효시가 되었다. 비행기 안에 지금처럼 오븐은커녕 기내식을 실을 공간도 마땅찮던 시절엔 중간 기착지의 공항식당에서 승객에게 식사를 제공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비행기도 많이 좋아지고 기내식 저장 및 조리 기술도 함께 발전해, 지상에서의 호화로운 레스토랑 못지 않게 다양한 메뉴와 질 좋은 음식을 기내에서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기내식의 단가는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이코노미석 기준 1만원 내지 3만원 정도라고 한다. 비즈니스 석의 식사 단가는 이코노미 석의 3배, 1등석의 식사 단가는 이코노미석의 9배 정도라고 한다. 생각보다 비싸다고? 먹는 입장에서야 양도 적고 길거리 도시락 전문점에서 파는 도시락과 비슷한 차림새이니 그렇게 생각할 만 하다. 그러나 만드는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기내식은 아주 특수한 환경에서 별 탈 없이 먹을 수 있도록 온갖 과학과 연구 개발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일단 기내식은 특수한 환경에서 먹게 되는 음식이다. 좁은 공간, 지상보다 훨씬 떨어진 기압, 낮은 산소 농도, 지속적인 비행기 소음, 운동 부족에서 오는 혈액 순환 불량과 소화 불량, 건조한 공기라는 특수한 환경 속에서도 기내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기내식 메뉴 개발에는 이 모든 것들이 고려된다. 그런 이유로 기내식은 소화가 잘되고 흡수되기 쉬운 음식으로 구성된다. 보통 한 끼당 700키로칼로리 내외에서 식단이 짜여진다. 그리고 기내의 특수한 환경은 우리의 미각과 후각을 둔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기내식은 통상 우리가 먹는 음식보다 조금 더 짜게 만들어진다. 기내에서 마시는 와인 역시 건조한 공기 때문에 향을 느끼기 힘들어 향이 강한 와인이 쓰인다. 


또한 좁은 공간에서 무리없는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그릇과 쟁반, 운반구가 모두 철저하게 계산되어 제작된다. 음식을 만드는 스케쥴도 철저히 짜여져 있다. 기내식은 항공기 운항 스케쥴에 맞추어 지상의 음식공장에서 미리 조리된 음식을 정해진 그릇에 담아, 잠시 저장하였다가 항공기 출발시간에 맞추어 기내에 싣고, 알맞은 시간에 기내 주방에서 재조리하는 과정을 거친다. 게다가 소비자 입맛에 맞게 메뉴도 개발해야 하는데 모든 메뉴 개발에는 언제나 이런 특수한 환경을 고려하는 과정이 있다 보니 메뉴를 개발하는 데에도 당연히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투입되게 된다. 승객 입장에서야 1년에 여러 번 비행할 일이 많이 없으니 메뉴가 규칙적으로 바뀌는지 알 수가 없지만, 사실 항공사는 1년에 4번 정도 분기별로 메뉴를 개발하여 선보인다. 각 항공사들이 보유한 메뉴는 최대 2만여개. 항공사들은 각 노선, 운항 거리, 계절, 재료 수급 여부와 예산에 맞추어 기내식을 제공하게 된다. 



아래는 1992년 6월 29일자 연합뉴스의 기내식 관련 기사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당시에도 기내식은 단순히 배를 불리는 것 이상의 즐거움이 되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항공사의 입장에서는 입맛이 까다로운 손님이다. 기내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양식에 익숙치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항공사들은 기내식에 남다른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대한항공은 기내식 서비스질을 높이기위해 지난 86년 4월 김포공항내에 기내식공장을 완공한데 이어 지난 90년부터는 韓食을 서비스해 한국승객들로부터 호응을 받고 있다. 국제선 장거리노선에 불고기, 비빔밥, 설렁탕, 해장국 등에다 고추장을 제공하고 있고 1등석과 프레스티지 클라스 승객에게는 특별식으로 라면을 서비스한다. 韓食이 인기를 끌자 아시아나항공과 서울을 취항하는 동남아항공사들도 앞을 다투어 韓食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이같이 韓食이 기내식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은 해외나들이를 하는 한국인이 많아 진 것이 가장 큰 이유지만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韓食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도 큰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한국인의 경우, 그러나 막상 식사가 나오고 나면 대부분이 가벼운 실망감 느끼기 마련이다. 機內에서는 운동량이 거의 없어 시장기가 들지 않는데다 음식이 대부분 양식이어서 입맛에 별로 맞지않기 때문이다. 해외여행에 익숙하다고해서 기내식에 쉽게 정이 가는 것은 아니다. 기내식이 갖고 있는 한계는 어쩔수가 없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은 평소 양식을 접할 기회가 그다지 많지 않아 맛이 있어서가 아니라 다만 시장기를 속이기위해 배를 채울뿐이다.


<경제萬華鏡> 항공기 기내식 어떻게 나오나



아래는 2007년 9월 28일자 한국경제의 기내식 관련 기사이다. 1992년으로부터 15년이 흐른 뒤 대한항공이 유기농 야채로 만든 비빔밥 등으로 웰빙 식단을 선보이자, 아시아나항공은 지상에서 인지도가 높아진 고급 브랜드 레스토랑을 1등석의 기내식에 그대로 옮기겠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아시아나항공은 다음 달 서울 중구 롯데호텔 중식당인 '도림'과 제휴를 맺고,이 식당의 최고급 코스 요리를 미주노선 일등석 및 비즈니스석에 공급키로 했다. 국적항공사가 외부 유명 레스토랑으로부터 기내식을 공급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1인당 10만~20만원에 달하는 도림의 코스요리를 구름 위에서도 맛볼 수 있게 된 셈"이라며 "호텔에서와 똑같이 전채요리에서부터 메인요리에 이르기까지 7~8가지 음식을 고객에게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은 또 지난 1일부터 인천~LA 노선 일등석 고객에게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세계 10대 음식점'중 하나인 '딘타이펑'의 딤섬을 제공하고 있으며,11월부터는 남산 하얏트호텔 맞은 편에 위치한 고급 이탈리안 레스토랑인 '라쿠치나'의 스파게티 요리도 선보이기로 했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고객들의 반응을 본 뒤 '레스토랑 기내식' 서비스 노선과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라며 "제휴 레스토랑을 늘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구름위의 만찬' 기내식 전쟁 2라운드



이제는 우리나라의 제주 항공 등 저가 항공사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기내식 문화는 또 다시 달라질 것 같다. 저가항공은 항공료가 싼 대신 기내식과 각종 음료 서비스가 항공료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승객이 티켓을 구매할 때 기내식또 별도로 결제하거나, 기내에서 현금을 주고 기내식을 따로 구입해야 한다. 그러니 이제는 없던 메뉴판도 생겼다.

이렇게 되면 탑승 인원을 예측해 기내식을 만들 수 없으니, 기내에서는 승객 각자가 달리 주문한 메뉴의 음식을 준비하기 위한 과정이 더 복잡해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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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개꾸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