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로운 글2013. 9. 8. 00:50

세상에 영원한 백업(back-up)은 없다. 어떤 직장도, 시스템도 나의 삶을 죽을 때까지 안전하게 보호해 주지 못한다. 공무원과 군인의 평생 복지는 자신의 자유로운 직업 및 직장의 선택지를 포기하고 나랏일을 도맡아 하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국가가 예외적으로 제공하는 혜택인 것이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만큼 되돌려 받는 과정을 지속해야 생계를 이어나갈 수 있다. 


평생 직장이라는 건 점점 없어져 가는 추세이다. 노동유연성은 갈수록 높아지고, 결국 회사에 돈을 벌어다 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만이 이직과 빠른 승진, 성과급 등을 통해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구조가 되고 있다. 특히나 우리나라처럼 산업 구조나 경제 상황이 빠르게 변하는 나라에서는 노동 유연성이 높아지는 속도가 더 빠르다. 지금 대기업에서 한창 일하고 있는 스펙 좋은 젊은 사람들이 현재의 안정된 직장에서 나올 때가 되었을 때, 그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몇 개 되지 않는다. 현재의 직급보다 조금 더 높은 직급, 현재의 연봉보다 조금 더 높은 연봉에 지금 내가 시달리고 있는 팀원들과 팀장이 없어서 조금 더 일하기 편하거나, 막연히 배울 게 있어 보이는 곳으로 옮길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직장에서 나와서 세 번째 직장을 잡았을 때, 직급과 연봉과 복지를 비교해 가며 더 나은 쪽을 선택할 것이다. 그렇게 직장을 선택할 때 비교할 수 있는 몇 개 잣대들을 가지고 계속옮겨다니다 보면, 문제는 결국 더 이상 재취업이 어렵게 된 나이가 되었을 때 다가온다.


그러니 그 때까지 모아놓은 종잣돈으로 치킨집이나 편의점, 프렌차이즈 카페 같은 것을 열게 된다. 그것 말고는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스로 투자하고 그 투자금을 직접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운용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직장에서 내려오는 지령대로만 일하다가 갑자기 장사를 잘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간혹 잘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도 사실은 젊은 시절부터 계속 새로운 사업 기회에 관심을 기울여 온 사람들이지, 절대로 하루 아침에 목돈 좀 있다고 사업이 뚝딱 잘 되진 않는다. 안정성을 위해 프렌차이즈 가맹점을 열었다가 정말로 안정적이긴 하지만 몇 안되는 수입을 받으며 보람 없이 고생만 하는 사업을 하게 되거나, 아니면 자신이 그 동안 꿈꾸던 가게를 차리겠다고 인테리어부터 상품 구성까지 직접 하다가 감이 없어서 실패하는 경우도 많다. 신문 기사들은 이게 다 대기업 프렌차이즈가 가맹점주의 돈을 다 뺏어가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가맹점주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 하고, 정책 당국은 이 이슈가 논란 거리가 되었을 때 정권에 대한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 얼른 법을 만들어서 액션을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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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개꾸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