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로운 글2012. 8. 28. 19:16



흉악 범죄 보도가 유달리 많다. 사람들은 흉악 범죄가 많은 세태를, 요즘 자신의, 또는 사회의 중요한 이슈로 여기게 되고, 새로 업데이트되는 새로운 흉악 범죄 기사에 이전보다 더 주목한다.


이 때부터 흉악 범죄 뉴스는 언론사의 메인 상품이다. 새로운 흉악 범죄를 제일 빨리, 다른 언론에서 다루지 못한 내용을 보도하는 언론사가 이 경쟁에서 이긴다. 단독이나 특종이 없으면 이제까지의 흉악 범죄를 총정리하고 여기에 의미를 부여하는 기사를 내서라도 흉악 범죄를 하루에 꼭 한 번씩은 보도한다. 잘 팔리는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보수 언론과 진보 언론은 같은 사건을 두고 각각 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보수 언론은 흉악 범죄가 소수 낙오자의 개인적 분노에 의한 범죄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범죄자의 개인적 신분을 언급하며, 그들이 보험설계사라든지 수도권 대학을 졸업했다든지 하는 이야기를 덧붙인다. 진보 언론은 범죄자들의 어려웠던 어릴 적 삶을 회고하며, 그들이 사회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해 자라난 돌연변이이며, 이에 대한 책임은 사회에 있다고 해석한다


보수 언론은 '노력하면 누구나 잘 살 수 있는 세상에 -> 노력하지 않은 자들의 개인적 분노 -> 흉악 범죄로 표출 -> 사회에는 책임이 없고 -> 이들 범죄자들에 대한 지금의 제어 장치도 충분치 않으며 -> 더 강력한 제재, 더 강력한 처벌을 가해야 한다' 고 주장한다


진보 언론은 '소수 낙오자를 보듬을 수 없는 세상에 -> 경쟁의 기회조차도 동등하게 갖지 못한 불쌍한 범죄자들 -> 그들은 우리 사회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어두운 단상이며 -> 이들을 개인적으로 처벌한다고 해서 뿌리뽑히지 않는다 -> 따라서 처벌을 강화할 게 아니라 사회를 바꿔야 하고 -> 이들의 잘못이 100%는 아니므로 인권도 존중해 줘야 한다' 고 주장한다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진보 언론의 보도를 읽고 고개를 끄덕이며 저 생각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며 확증 편향을 넓혀 간다. 대부분 자신의 노력으로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일궜다고 생각하는 보수 성향의 사람들은 보수 언론의 생각에 지극히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이 두가지를 읽고 어느 한쪽이 옳다고 여기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이다. 누군가는 보수 언론의 생각에 동의하고, 누군가는 진보 언론의 생각에 동의한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 두 입장 모두 옳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매스 미디어의 생리, 기자들이 기사 아이템을 선택해서 이것이 데스크에 의해 가감되는 과정까지를 이해해야 한다. 미디어의 생리를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이 둘 다 맞다'라는 생각을, 말로만이 아니라 마음 속 깊이 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정치나 경제 이야기만 보수와 진보가 나뉘어 있지는 않다. 사회적 문제가 표출될 때마다 일간지의 사회 면을 살펴 보면 '사회는 정상인데 개인이 이상하다'고 하거나, '사회가 이상해서 이 개인도 피해자다'라고 하는, 어느 한 방향의 시점으로 기사와 칼럼이 한 언론사에서 반복 생산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보수는 언제나 범죄자를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하고, 진보도 범죄자를 두둔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 한 쪽으로 기울어졌을 뿐 기자들도, 데스크도 결국은 사람이 하는 것이므로 보수도 인권을 중시하기도 하고, 진보도 투자를 중시하기도 한다. (혹은 투자가 중요한 것이 극명할 때, 인권이 중요한 것이 극명할 때마저도 반대를 주장하면 그것은 그 기사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것이 되니까)


언론을 잘 소비하려면 매스 미디어라는 회사와 그 안의 조직 문화에 대한 감을 잡고, 뉴스의 원재료를 발굴해 그것을 가공, 생산하는 과정, 그리고 포장된 완성품으로 독자들 앞에 나타나게 되는 과정까지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그런 재료들로부터 진짜 자기 생각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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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개꾸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