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로운 글2012. 10. 16. 21:11

2011-2 홍익대 예술학과 포스트모더니즘 미술론 중간고사 썸업




포스트모더니즘 미술

- 후기구조주의자들을 통일된 주체라는 데카르트 식의 개념을 비판한다. 데카르트적 개념은 주체/저자를 본유적인 의식으로, 또 의미와 진리의 권위로 본다. 이에 반해 후기구조주의에서는 인간 주체가 통일된 의식을 갖지 않고 언어에 의해 구조화된다고 본다.

- 푸코의 존재론 : 푸코에게 사회 권력은 개인의 심리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고, 인간 개인은 단지 외부의 권력의 전개에 의해 변형되는 구체화된 연계물로 존재할 뿐이다.



자크 라캉

- 라캉에게 ‘주체’는 결코 총체적인 하나의 인격체가 될 수 없다.

- 기표 밑에서 기의의 부단한 미끄러짐 : 기표와 기의 사이의 일대일 대응이 없다는 것.

- objet a : 남근의 ‘결여’. 주체가 그 자신을 구성하기 위해 분리해야 하는 어떤 것. 오브제 아를 상실했을 때 주체는 결핍의 느낌을 받는다. (포트 다 게임에서의 실패) 오브제 아는 우리가 타자에게서 구하는 욕망의 대상. 그리고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대상, 욕망의 원인. 오브제 아는 자기로부터 완전히 구별되지 않고 또한 타자로서 완전히 포착되지도 않는 대상. 대상에 대한 사랑은 상실된 부분에 대한 부단한 탐색일 뿐.

- 상실 : 주체의 형성이 오히려 주체의 상실을 가져 온다. 동일시하던 어머니와 분리되면서 무의식적으로 상실에 대한 그리움과 욕망이 생겨난다.

- 소외 : 이름, 지위와 같은 상징적 기표를 획득하면 타자의 시선으로 본 자신을 내면화하게 되고, 이 지점에서 자아의 소외가 생겨난다. 이 소외는 자신과 타자의 시선으로 본 자신으로 나뉘는 데서 발생하고, 결핍을 동반하는 소외이다. 그 결핍을 메우기 위해 주체는 끊임없이 욕망의 대상을 찾게 되는데, 그것이 오브제 아다.



자크 데리다

- 기표는 기의와 직접적 관계가 없다. 기호가 가리키는 그것은 하나의 특정한 기호에 매여 있지 않다. 기호의 구조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 않는 타자의 흔적에 의해 결정된다.

- 기호에는 그 자체로 결코 드러나지 않는 다른 기호의 흔적이 항상 남아 있기에 반드시 ‘말소 하’에서 연구되어야 한다. 의미는 그 자체와 결코 같지 않다. 하나의 기호는 여러 다른 맥락에서 나타나므로 그것은 절대로 완전히 같은 것이 될 수 없다.

- 로고스중심주의 : 처음이자 마지막이 로고스, 신성한 정신, 자기현존이라고 여기는 믿음. 형이상학이라는 말 대신 데리다가 쓴 말. 초월적 진리가 있다고 믿어 온 서양철학의 가정. 그래서 확실하고 안정적인 ‘초월적 기의(=로고스)’와 직접 대응하는 ‘초월적 기표’에 대한 갈망을 엿보이는 믿음.

- 데리다는 기표와 기의에 대한 전통적 관념이 음성중심적이고 로고스중심적인 인식틀(에피스테메) 안에 확고히 자리 잡고 있다고 비판하며, 오히려 글이 언어의 전제 조건이며 말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데리다는 로고스중심적 기호이론을 전복시키려 했다.

- 음성중심주의에는 인간이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고 자기 존재의 내적 진실을 위한 매체로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가정하는 것이다.

- 기표는 기의를 가리킨다. 양자는 모두 의식에 현전한다. ‘개’라는 기표는 ‘개’의 관념을 가리키지, 지시대상인 실제의 개는 존재하지 않는다. 데리다의 관점에서 기호는 부재한 존재를 표시한다. 우리는 대상을 제시하기보다 기호를 활용한다. 그러나 기호의 의미는 항상 미뤄진다.

- ‘차연’이 바로 그 의미다. ‘다르다’와 ‘미뤄지다’를 의미하는 용어다. 차연은 글쓰기에서만 드러난다. 이런 글쓰기개념의 우위는 구조 개념에 대한 도전이다. 구조는 항상 중심, 고정된 원칙, 의미의 위계를 전제로 하지만, 글쓰기에서는 끝없이 차연, 즉 다르게하기와 연기하기가 일어나는 것이다.

- 기표에서 독립된 기의의 영역이 존재할 수 없으며, 기의들이 아니라 다른 기표들을 가리키는 기표들의 끝없는 유희만이 있다. 그래서 의미란 항상 결정 불가능한 것이다.



미셸 푸코

- 푸코는 헤겔의 목적론적 모델(하나의 생산양식이 다른 생산양식으로부터 변증법으로 나온다)을 거부하고 차이의 부각을 통한 니체 식의 비평전략을 택했다. 푸코의 방법은 지금껏 당연시되어 온 현상들의 ‘합리성’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과거를 비합리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오늘날의 가정은 흔들리게 된다. 과거와 현재의 간극은 푸코의 ‘차이’의 원리를 분명하게 해 준다.

- 보통은 지식이 무엇을 하는데 필요한 권력을 제공해 준다고 생각하는 반면, 푸코는 지식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권력, 즉 다른 사람들을 규정할 수 있는 권력이라고 주장한다. 지식은 더이상 해방이 아니며 감시, 규제, 규율의 방식이 되는 것이다.

- 일망감시체계(panopticism) : ‘모든 것을 보는’ 구조인 파놉티콘. 기독교 신의 ‘무한 지식’이 유사하다. 또한 프로이트가 말하는 무의식적 소망의 내적 감시자로서의 ‘초자아(super-ego)’와도 비슷하다.



쥴리아 크리스테바

- 라캉과의 차이 : 라캉에서 상상계의 질서가 오직 시각적 등재(visual register)에서만 기능하는 것과 달리, 크리스테바는 모든 감각의 등재를 강조한다.

- 라캉이 소홀하게 다루었던 전 오이디푸스 단계와 전 거울단계의 과정을 잘 나타낸다.

- 상징계와 기호계는 서로 변증법적 관계를 맺으며 언어의 의미체계를 구성한다. 기호계는 어머니를 지향하는 전 오이디푸스 단계, 상징계는 아버지의 법칙이 규제하는 오이디푸스 단계다.

- 기호에서 작용하는 멜랑코리아 메커니즘 : 기호가 기초하고 있는 상실의 부인, 즉 모성적 사물 본체의 상실을 언어적으로 극복하지 않고 기호에 정서를 싣는다는 것이다.

- 코라(chora) : 의미화 과정을 활성화하는 에너지. 플라톤은 우주의 기원적 공간을 뜻했지만, 크리스테바는 인간이 개인 정체성의 명확한 경계를 발전시키기 이전에 각 개인에게 속하는 정신 속의 어떤 것을 염두에 두었다. 이곳에서부터 주체가 생산되기도 하고, 소멸에의 위협을 받는다. 코라는 주체로서의 아이의 자아, 정체성, 아이의 몸의 한계를 규정하고 구성한다. 주체를 전복시키는 공간, 즉 죽음 충동이 출현하여 주체를 집어삼키고 비존재의 타성으로 몰락시키려고 위협하는 공간이다.

아이는 코라 속에서 자신의 첫 소리와 제스처로 감정과 에너지를 표현하고 방출한다. 다음으로, 어떤 사건들을 통해 자신이 주위 환경과 분리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아이는 언어를 상징적으로 사용할 준비를 마친다.


- 정동affect : 정신분석 이론에서 주체 내부에서 활동하는 내적 충동과 에너지의 출현. 이 충동들은 해방되어 방출-정동으로 귀착되거나 혹은 억압되어 긴장-정동ㅇ로 귀착될 수 있다.

- 크리스테바의 주체성의 이론 : 언어 체계를 기반한 주체성의 이론이다. 그가 제시한 발화 주체(speaking subject)는 무의식과 의식의 동기화 사이, 생리적 과정과 사회적 제약 사이에 나눠진 주체를 일컬음. 따라서 그녀의 주체성 이론은 구조주의적 언어체계나 현상학적 담론으로 규명할 수 없고, 분열된 주체의 담론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이것이 정신분석학과 연결점을 찾는다.

- 업젝션(abjection) : 주체가 언어를 습득하고 사회적 규범에 적응해 가는 과정(대상징계로의 진입)에 중요하게 개입되는 양상. 유아기에 동일시했던 어머니와의 관계를, 혹은 모체 자체를 비천시하고 배척하는 작용을 뜻함. 경계에 속하는 것, 애매한 것, 합성체 등.


- 아브젝트가 천하고 더러운 대상을 지칭한다면, 아브젝시옹은 적합한 주체성이 형성되기 위해서 부적절하고 더럽고 무시되는 것들이 어떻게 배제되어 왔는지를 알려주는 개념. 아브젝시옹은 아브젝트에 관한 주체적 반응이다. 상징질서가 요구하는 명확한 개념의 주체가 무의식 속 저편에 있는 아브젝트에 대해서 흐려지고 모호해진다. 아브젝트는 내던져진 대상으로서 비체, 혐오의 대상, 추방, 배제, 타자와 연관이 깊다. 비체의 개념, 즉 몸의 경계선상에 위치한 분비물, 구토물은 어머니라는 주체 내에서 이루어질 수 있지만 태어나서 어머니 몸 밖으로 나가면 어머니의 몸이 비체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머니의 몸은 불결한 것으로 배제되어야 할 부정적인 몸이 되어 아이에게 분노와 증오,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어머니의 몸이 금기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는 어머니의 몸에서 완전히 분리되어야 제대로 된 주체성을 얻게 된다.


- 홀바인의 <죽은 예수>

1) 기호학적 의미 신/아버지로부터의 단절로 인한 구원/상징과의 분리가 기호학적 맥락에서 육체적 죽음보다 더한 ‘상징의 죽음’을 초래하는 것

2) 정신분석학적 파급효과 : 그 고립과 분리가 이 그림 앞에 선 주체에게 구원의 확신이 부재한 무신론적 상태에 상응하는 멜랑콜리의 심리적 소강상태를 야기함.

- 크리스테바는 잘 알려진 작품들에 대한 관습적 이해의 틀을 벗어나 이러한 미술사의 대상징적(the Symbolic) 해석틀에 의해 은폐돼 있던 모성 담론의 내용을 기호학적(the semiotic) 영역의 이론적 프리즘으로 읽어냈다.

- 세쥬라(Caesura) : 그림과 관객 사이의 분리. 전능한 아버지와 분리된 죽은 시체로서의 예수. 홀바인이 그림에서 궁극적으로 표현하려는 정서는 고립이 유도하는 분리. 이 분리의 의미는 주체의 욕망과 의미체계와의 연관에서 도출할 수 있음. 예수는 석관의 기반으로 우리로부터 분리돼 있고, 낮은 관 천정으로 내세에 대한 전망이 없어 보인다.

- 멜랑콜리아 : 말하는 존재가 기호 영역을 상실하거나 회피하게 되는 상태이다. 상징체계와 갈등 관계를 맺는 심적 구조. 의미체계와 기호연관에 있어서의 주체와 상징 사이의 특정 관계를 지칭하는 것이 멜랑콜리아. 문학적 창조는 멜랑콜리 환자가 나아갈 길, 그의 슬픔과 비애를 상징적 대상으로 바꾸고, 다른 말하는 존재들의 공동체에 참가할 수 있는 길을 제공한다.

- 나르시스적 우울증 환자(멜랑콜리 환자)는 대상Object이 아니라 물자체Chose의 상실을 슬퍼한다. 나르시스적 우울증 환자는 명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빼앗겼다고 느끼기 때문에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 모든 사람이 결국은 어머니를 상실(젖을 떼기)하기 때문에 대부분은 이미 잃어버린 것을 추격하고자 언어와 말을 사용함으로써 이 잃어버린 욕망의 대상을 보상한다. 그러나 우울증 환자에게는 그런 욕망의 대상이 전혀 없다. 우울증 환자는 어떤 대상에 대한 관심이 없기 때문에 상징적 영역으로 진입하는 것, 즉 말하거나 쓰는 것에 대한 추동력을 잃어버린다. 왜냐하면 말과 언어가 주체의 정동과 욕망, 기호적 코라와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 상상적 영역에서 아이가 어머니를 상실하는 동시에, 아이는 상상적 아버지와 합병하거나 동일시하기 시작한다. 구조가 성공적으로 작동하면 아이는 자신과 어머니를 성공적으로 분리하고, 동시에 자기가 잃어버린 것을 명명할 수 있는 말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아이가 필요할 때 어머니를 부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라캉과 크리스테바

- 코라는 플라톤의 '티마이오스'편에 나오는 용어로서 신의 조화와 질서가 개입되기 전의 무정형이고, 무한하며, 감각적 속성이 담기기 전의 에네르기적 공허 그 자체다.

- 라캉이 '오브제 a'라는 개념을 말할 때 그는 이분법적인 구분을 쓰지 않고 젖가슴, 대변, 남근, 소변, 눈길, 목소리, 아무것도 아닌 것 등을 뭉뚱그려 하나의 범주에 포함시킨다. 그러나 크리스테바는 이를 서로 상반되는 양가적 특성으로 나누고 이를 하나의 대상 속에 동시에 모두 포함시켜 '아브젝트'라고 부른다. 라캉에게 있어 오브제 a는 불안의 대상이고, 아브젝트는 오브제 a와는 달리 혐오스러움을 중심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 기호계는 무정형의 세계이지만 이곳이 의미화과정의 시발점이라는 데서 의의가 있다. 이 모성 공간 속에서 아이는 신체를 통과하는 생리학적인 리듬과 충동, 순간적인 정지를 통해 질서와 형태 감각을 익히며 아버지의 법 이전의 넉넉한 어머니의 법을 습득하고 언어의 토대를 익힌다. 이곳이 기호계다. 기호계는 아버지의 법으로 상징되는 고정되고 정형화된 언어세계(이미 만들어져 인간을 규제하는 세계)를 흔들며 충동의 부정성을 방출한다.

- 상징계 속으로 암암리에 기호계의 에너지가 방출되어 의미체계를 이루기에 크리스테바는 언어가 본질적으로 상호텍스트성에 의한다고 간파한다. 즉 언어는 상징계와 기호계가 교차하는 큰 상징계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상징계가 의미를 정지, 고정시키려 한다면 기호계는 이를 거부하며 흔들어 놓는 것이다. 기호계의 침입을 최대한으로 허용하는 담론이 시이다.



데리다와 크리스테바

1) 니체 생각을 공유

니체 작업의 주요한 특징이 형이상학에 대한 불신, 진리에 대한 의심이다.

2) 니체의 은유욕구

니체의 철학에서 텍스트는 결코 고정돼있지 않고 결코 해독될 수 없다.

“우리는 언어와 그 개념들의 덫에 걸려 있다” 우리가 ‘덫에 걸린 상황’을 표현하고 싶어도,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그 개념이 아닌 다른 것으로는 이를 표현할 수 없다.

니체에게 있는 그대로의, 그 자체와 똑같은 의미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관념은 동일하지 않은 것들을 동일하게 함으로써 생겨난다. 은유는 유사하지 않는 것들 사이에 동일성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3) 철학에 대한 비판

언어가 근본적으로 은유적이라는 사실을 플라톤부터 현대까지의 철학이 은폐해왔다. 철학은 은유들을 사용해왔으나 그 사실을 숨긴 것이다. 사유는 항상 불가분하게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수사학적 장치들에 좌우되어 왔다는 사실을 인정한 소피스트가 오히려 지혜에 보다 근접했다.


데리다와 크리스테바의 공통점

1) 문학작품의 지위 격상 - 니체의 뒤를 이어 데리다 역시 모든 언어가 뿌리 깊이 은유적이며, 수사와 비유적 표현으로 움직인다는 점을 공감했다. 그런 점에서 문학 작품은 다른 형태의 담론보다 덜 자기기만적이다. 문학작품은 자신의 수사학적 지위를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테바의 '기호적 코라' 역시 비슷하다. 코라는 아직 세계 이전, 언어 이전, 상징 이전의 자유로운 충동이 방출되는 곳이기에, 억압된 삶의 경직성에 도전하는 시 장르가 가장 가까이 기대어 있는 곳이다.


2) 소쉬르의 언어학 비판 - 데리다는 소쉬르가 기표와 기의 사이의 뚜렷한 구별을 유지한 것에 대해 비판했다. 데리다가 보기에 기표와 기의는 1:1로 대응하지 않는다. 소쉬르의 사유에서는 기호가 하나의 단일체이지만, 데리다가 볼 때 단어와 사물은 결코 하나가 되지 못한다. 기표들과 기의는 계속해서 깨져서 분리되고, 새로운 결합들로 재조합된다. 하나의 기호는 다른 하나로 이어지고 이런 과정이 무한히 계속된다. 기호에는 그 자체로 드러나지 않는 다른 기호의 흔적이 항상 남아 있기에, 반드시 말소 하에서 연구되어야 한다.

크리스테바의 기호이론 역시 비슷하다. 크리스테바는 기존의 상징계의 개념으로만 설명되던 언어 구조에 기호계라는 새로운 영역을 추가했지만, 이 둘을 이항대립적 관계로 보지 않았다. 상징계와 기호계는 의미작용에 있어 서로의 빈틈을 메워 주면서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소쉬르의 기호학에서 놓친 지점, 즉 라캉의 상상계 이전 단계에 해당하는, 그녀의 ‘기호적 코라’ 시기의 표현방법을 언어 구조에 중요한 위치로 제시하면서 이루어졌다. 코라 단계에서 아이는 자신의 소리나 제스쳐로 감정과 에너지를 표현하고 분출한다. 이는 상징적 언어를 사용하기 이전의 단계다. 그러나 이 아이가 상징적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고 해서 기호계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3) 니체의 언어이론과 비슷 - 데리다가 영향을 받은 하이데거에 의하면 “존재가 의미(signification)에 담길 수 없고, 항상 의미에 우선하며, 실제로 의미를 초월한다”. 이것은 은유가 언어의 표현법 중 하나가 아니라 언어의 본질적 상태라고 할 수 있다는 니체의 생각과 일맥상통한다.


4) 주체이론과 언어이론을 합침 - 라캉 이후 주체는 언어의 구조로 분석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이 지점을 데리다와 크리스테바가 공유하는 한편, 라캉의 논의에서 더 후기구조주의적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먼저 크리스테바는 두 거대한 탐구 영역, 주체성과 언어를 하나로 포갠다. 그녀의 중심 개념이 ‘말하는 존재speaking being’이다. 크리스테바에게 언어는 때때로 꺼내 쓰는 도구가 아니라 ‘말하는 주체가 자신을 구성하고 해체하는’ 의미화 체계다. 이 주체는 크리스테바가 ‘과정 중의 주체’라고 명명했다. 결코 자명한 통일체라고 할 수 없는 주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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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개꾸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