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로운 글2012. 9. 23. 23:11

 

8개월째 새로 가르치고 있는 친구가 있다

처음엔 ADHD로 치료를 받은 적이 있고, 아버지와 같이 살고 있지 않다.. 는 정도만 듣고 시작했다

그런데. 너무 착하고 순했던 첫 인상과는 반대로

가르쳐보니 너무 힘들었다.

이제껏 20명 남짓한 아이들을 가르쳐 봤지만

이 아인 그 아이들과 비교도 안되게 힘들었다.

한 번 가르쳐 준 것을 수 번 반복하는 것은 예사였다.

과외 시간을 과외 시작 30분 전에 바꾸거나 안된다고 하고

가면 벨을 눌러도 답이 없거나 전화를 안받기도 했다.

허탕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거 알면서 모르는척 돌아선 게 한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어리니까, 아직 사춘기니까 이런 것들도 인간적으로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상처를 잘 받는 아이 같아 꾸짖기 보다는 모르는 척 넘어간 적이 훨씬 많았다

가끔, 아주 필요하다고 싶을 땐 꾸짖었다.

그것도 미워서, 화나서 그런건 아니었다.

정말로 그럴 필요성을 느껴서 일부러 악역을 자처하기도 했다.

나는 이게 모두 주의력 결핍 장애 때문에 그런 줄 알았다.

 

가끔은 수업을 안하고 이 아이의 학교 이야기를 들어 주거나

인생 그래프, 인생 그림 같은걸 그려서 의욕을 북돋아주기 위한 오버액션도 많이 했다

이 아이의 아픈 부분을 일부러 긁어서 충격요법을 좀 주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8개월을 가르치면서 이 아이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다시 한 번 이 아이를 다르게 보게 된 계기가 있었다

언제나 해가 지기 전에 이 아이를 가르치러 가서, 해가 떨어지기 전에는 마쳤는데.

하루는 시간이 너무 안맞아 저녁 8시쯤 찾아갔었다

여름이어도 어둑어둑했던 시각.

문을 여니 집엔 아이 말고 아무도 없었다

거실엔 아이가 먹던 식은 토스트와 우유가 꺼내져 있었다

노란 형광등을 켜고 방으로 들어갔다

노란 형광등 밖으로 보이는 남색 밤하늘, 갈색 방범 창.

집에선 아이의 방만 노란 불이 켜져 있고, 그 불이 비추는 거실의 식은 토스트와 테이블.

내가 어렸을 적이 떠오르면서

묘하게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었다.

 

그 날 그 친구는 '기대했던 대로' 숙제를 하지 않았다

나는 이 쯤 되면 한 번 혼낼 타이밍이다 싶어 혼냈다.

물론 혼낼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이 모든 게 이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너무 잘 안다.

이렇게 숙제를 하지 않는 것까지도.. 정말 이 아이의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혼내지 않고, 언제까지나 봐준다면 이 아인 계속 이렇게 약하게 자랄 것이다.

눈 딱감고 싫은 소릴 했다.

충격 요법을 줘야겠다 싶어 또 가족 얘길 꺼냈다.

 

그런데 그 날따라 테이블 위 식은 토스트를 본 게 너무 마음이 아파서

정말 쓸데없는 소리까지 해 버리고 말았다.

이 아이를 마치 다 이해한다는 듯, 아이의 상황을 묘사하기 시작했다.

"학교 마치고 집에 오면 언니도 엄마도 없고,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치이면서 받은 스트레스 따뜻하게 감싸 줄 가족이 없고, 밥도 혼자 먹고 잠도 혼자 자야 하고.... "

아이의 상황이 되어 보고, 장면들을 상상하며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는 정말 '왈칵' 눈물을 쏟았다.

하지만, 이 아픈 부분들이, 결국은 더 잘 살고 싶다, 뭔가 더 열심히 해보고 싶다 하는 마음을 들게 하는 원동력이라는 생각에(적어도 나는 그랬다) 계속 건드렸다.

 

이야기가 길어졌다.

나는 뭔가 민망하고 미안한 마음에 괜한 질문을 했다.

"엄마 언제 오셔"

"금요일 밤에요..'

"언제 가셨는데"

"월요일 아침에 나가셨어요..."

 

처음 안 사실이다. 어머니가 밤에 일하신다는 건 들었지만. 주중에 내내 집을 비우시는 지는 몰랐다.

이 아이를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내가 너무 바보같았다.

이 아인 나보다 훨씬 힘든 과정을 겪고 있었다.

나도 경제활동을 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지만

이 아이는 매일 밤 밥을 혼자 먹었고, 아침엔 깨워주는 가족이 없어 학교에 매번 늦었고, 그렇게 벌을 서고, 벌을 서면 학교에서 늦게 오고, 그래서 매번 나와의 과외를 미뤘던 것이다.

이런 걸 '그럼 너가 일찍 일어나야지!' 라며 그 아이의 불성실함을 꾸짖기엔

중1. 그 아인 너무 어렸다.

 

엄마 대신 자신의 밥상을 저녁마다 차리면서, 회식 때문에 늦게 올 언니를 기다리면서, 선생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숙제도 가끔 하면서, 그리고 가족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누구보다 훨씬 예민할 친구 관계에까지 신경을 곤두세우면서.. 이런 걸 모두 완벽하게 소화하기엔 너무 어렸다.

 

이 걸 깨달은 순간.

더 이상 내가 인생이 어쩌고, 책임감이 어쩌고 하는 잔소리를 하는 게 무의미하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절대로 이 아이의 상처를 이해해 줄 수 없고

단지 어느 정도로 힘들 것 같다는 걸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나보다 열 두살이나 어리지만 그 아인 스물 여섯인 내가 겪어보지 않은, 외로운 삶을 겪는 중이고

거기다 대고 '나도 극복했으니 너도 극복해!'라고 말하는 건

나이라는 권위, 선생이라는 권위로 말도 안되는 군림을 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집에 한 명 쯤은 있어야 할 '엄한 아버지', 그 역할을 내가 해야 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인생 그래프를 그려주는 건방진 선생님은 되지 않을 것이지만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계속 알려 주는 엄한 선생님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외를 맡은 지 두 달 되던 때.

아이의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오셔서는

아이가 학교를 안갔다고, 집에도 안들어온다고... 어떻게 해야하냐며 울먹이며 전화를 거셨던 적이 있다.

돈을 받는 과외 선생님으로서, 최대한 아이가 집으로 잘 들어갈 수 있도록 가벼운 중재를 했지만

진심으로 아이를 걱정하지는 않았다.

 

이제는 그 어머니의 심정을 그 때보다는 훨씬, 내 일처럼 공감할 수 있다.

그날 밤 본 식은 토스트. 그리고 노랑 형광등 밑에서 울던 아이 때문에

내가 기자가 되든, 공부를 하러 떠나든...

내가 이 아이를 일주일에 두 번 만날 여력이 되는 때까지는.

이 아이의 사춘기가 힘들고 외로울지언정, 나쁜 길로 빠지지는 않도록 도와 주는

아버지같은 선생님이 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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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개꾸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