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로운 글2012. 7. 27. 19:05

(책에서 본 걸 나열하는 식으로 작성했으므로 각 단락이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유대인

 

유대인은 흔히 특정 인종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유대민족'이라는 말을 쓴다. 실제로 예전에는 유대민족이 있었지만 오늘날 유대인은 특정한 인종이 아니다. 유대인은 유대교의 가르침들을 지키고 믿으며 유대인의 문화를 이어받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핍박 받고 떠도는 삶


오늘날 유대인이라 하면 부자라는 임지가 강하지만 역사를 통해 보면 유대인은 가난했다. 오랫동안 유대인들은 기독교도들에게 생업의 기회를 약탈당해왔고, 유럽에서 유대인은 법률적인 차별을 받으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유대인은 일정한 직업에 종사할 수 없었다. 땅을 소유하거나 제조업자의 조합인 길드에 가입할 수도 없었다. 그러니 유대인들이 고리대금업이나 브로커를 한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대부분 유대인 강제 거주 지역인 게토에서 살도록 강요받았고 베를린같은 도시에서는 유대인 전용문이 있어서 그 곳을 통해서만 드나들 수 있었다.

유대민족의 등장은 기원전 2천 년 이전으로 추정되지만, 이들이 정식으로 국가를 갖게 된 것은 1948년이다. 계산상으로는 4천여 년을 나라 없이 떠돌았다. 그러나 땅과 국가를 갖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문화와 종교가 서구 방식으로 흡수된 나라가 있는 반면, 유대인들은 핍박받고 차별받으면서도 그 소에서 문화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살아남았다. 서구의 제국들이 기독교의 이름으로 정복한 비기독교 국가의 국민들은 모두 기독교로 개종했으나 유대인만은 개종하지 않았다. 이후 게토의 벽이 무너지고 유대인이 서구 문명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데는 한 세기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들은 사업가나 군인이 되며 유럽 각국의 지배계급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세기와 20세기 국가주의와 파시즘의 출현으로 반유대주의라는 새로운 정서가 유대인의 숨통을 다시금 옥죄었다. 반유대주의는 나치당의 선도 아래 퍼지기 시작해, 결국 600만명을 학살하는 20세기 최대의 참극을 불러 왔다. 히틀러가 반유대주의를 내세우고, 또 이를 대부분의 독일 사람들이 따랐던 데에는 여러가지 해석이 있다. 유대인이 독일인에게 밉보였다는 설부터 유대교-기독교 사이의 종교적 갈등, 볼셰비키 혁명과 유대인의 관계, 히틀러의 정치적 의도 등등. 모두 일정 부분 설득력이 있는 해석이므로 이들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스라엘 건국


유대인은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도망쳐 가기만 해서는 안전하게 살아갈 수 없으며, 자기 나라를 세워야만 자신과 자신의 민족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944년 유대인 학살은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의 가장 강한 동기였는지도 모른다. 2차대전이 끝난 후 유대인은 전시에 영국군을 도와준 덕으로 팔레스타인 땅의 일부에 자신의 나라를 세울 것을 약속받았다. 나중에 이 문제는 영국에서 유엔으로 이관되고 또 영국이 말바꾸기를 하면서 복잡해졌지만, 유대인은 1948년 팔레스타인의 일부에 자신의 민족국가인 이스라엘을 세울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경제 성장

이스라엘의 GDP는 건국후 10년간 연평균 10% 가량 성장했다. 특히 미국 및 유럽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에 대해 지원해주는 몫과 홀로코스트에 대한 독일 정부의 보상이 이스라엘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이후 알려진 것과 같이 금융업 및 영화산업에 진출한 것은 물론, IT와 BT, NT 분야에서도 두각을 보이고 있다. 4차 중동전쟁 이후에는 경기침체를 겪기도 했지만 1992년 팔레스타인과의 평화협정 체결 이후 연평균 7%의 고도성장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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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개꾸엉